“아빠! 열차표 예약했어요.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새벽부터 아내와 함께 설 연휴 열차표 예약을 위해 휴대폰 예매 사이트를 지켜봤다. 오전 7시, 드디어 예매 시간이 도래해 접속했지만 화면은 대기 중으로 고정됐다. 잘못 접속했나 싶어 다시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때 아내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그냥 계속 대기하고 있어야지, 왜 다시 클릭을 해서 대기자 숫자가 늘었잖아요.”
조급한 마음에 작은 숫자를 착각한 탓에 대기자 수가 순식간에 2만 명에 육박했다. 아내의 핀잔에 머쓱해 있던 순간, 딸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절 연휴 열차표 예매가 전쟁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지만, 직접 겪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설은 딸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라 혹여 표를 구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아들까지 온 가족이 매달렸다. 예전에 서울에 사는 동생들이 부산 큰집으로 내려와 차례를 지내려 했으나 표를 구하지 못한 사연도 들었던 터라, 딸의 귀성을 더욱 염려했다. 처음으로 경험한 귀성 전쟁이었다.
이는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귀성객들이 명절마다 치르는 연례행사 같다. 왜 이렇게까지 귀성 전쟁을 치러야 할까. 예전에는 명절 외에 연휴가 드물어 기를 쓰고 고향을 찾았지만, 지금은 공휴일이나 휴가를 통해 언제든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전쟁 같은 귀성을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딸은 설 다음날 직무 때문에 출근해야 한다며 귀경을 서둘러야 했고, 나는 차라리 오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서운했다. 그러나 아내는 가족이 모두 모여야 설다운 설이 된다며 단호했다.
소싯적에는 설날에 고향을 찾지 않으면 일 년을 잃은 듯 허탈감과 상실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정서보다 현실을 우선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대의 변화가 정서를 메마르게 하고 현실적 감정이 지배하는 듯해 두렵기도 하다.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때로 현실보다 정서에서 비롯되는데, 그 부분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더욱 불안하다.
삶의 가치를 되새기려면 인간의 정서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끝없는 경기 침체와 고물가,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이기심은 정서를 더욱 메마르게 한다. 특히 설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내놓는 위정자들의 치졸한 정책과 사탕발림은 오히려 처연한 느낌마저 준다. 설날은 단순한 개인의 기억을 넘어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정서가 메마르면 삶은 삭막해지고, 인간성은 점차 퇴색한다. 설날은 그런 현실을 잠시 잊고 따뜻한 마음을 되찾게 하는 기회다. 가족과 친지가 함께 모여 웃고 덕담을 나누는 순간은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설날은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인간성을 회복하고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부모형제와 친지가 함께 어울리고 이웃과 덕담을 나누며 화목을 이루는 귀한 날이다. 음력 1월 1일은 단순한 달력의 변화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한 해를 새롭게 열며 다짐과 희망을 품는 날이다. 설날은 조상께 한 해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차례와 가족 친지의 화목을 추구하는 하례의식이 강조되어 왔다.
나는 설날을 정서적으로 한 해의 시작으로 느끼며 새해 설계를 추진한다. 전통 의식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새해 첫날은 설날이다. 조상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려 노력한다. 가족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힘쓸 것을 다짐하며, 핵가족화로 친척조차 남이 되는 세대를 경계한다. 명절을 통해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우려 한다. 명절이 아니면 선조들의 철학을 공유할 기회가 없다.
설날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곧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귀성 전쟁을 치르면서도 부모형제와 친지를 찾아가는 행렬은 환영받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성 회복이며, 정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루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향유하는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이번 설을 기해 전통 가족의 정서를 깊이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