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에세이ㅣ기제사, 가족을 잇는 끈이자 화목의 토대

에세이ㅣ기제사, 가족을 잇는 끈이자 화목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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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는 단순히 조상을 기리는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형제자매 간의 정을 되새기며, 공동체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전병열 언론학박사/수필가

“어머님, 내년부터는 아버님 기제사에 함께 모시겠습니다. 대신 어머님 기일에는 산소에서 모시겠습니다.”

올해 어머님 기일에 제사를 드리며 영전에 이렇게 고했다. 그 순간, 오랫동안 마음을 짓누르던 갈등이 풀리는 듯했다.

그동안 부모님 제사를 합설로 모시자는 의견과 따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며 제사 때마다 논란이 이어졌다. 특히 음력 7월 삼복더위 속에 치러야 하는 어머님 기일은 아내에게 큰 부담이었다. 제사 준비 후 며칠간 몸살을 앓는 아내를 보면서도, 어머님을 잊지 않기 위해 기일 제사를 고집해 왔다. 그러나 결국 가족들의 뜻을 받아들여 산소에서 모시기로 합의했다.

기일은 돌아가신 날을 기리는 것이고, 제사는 그날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이다. 우리 집은 오랫동안 개별 기일 제사를 지켜왔지만, 5년 전부터는 조부모님 제사를 합설로 모시고 명절에는 묘제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 제사만큼은 기일을 고수했다. 부모님과의 추억은 생생히 남아 있어 그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도 기일을 ‘종신지우(終身之憂)’라 하여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근심으로 여겼다.

우리 집은 전통에 따라 자시(밤 12시)에 제사를 모셔왔다. 직장에 다니는 동생들은 저녁에 모시자고 했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온 전통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제사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제사는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뿐 아니라, 가족이 모여 화합을 이루는 자리로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근래 들어 많은 가정에서 제사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 제사상에 올릴 제수를 장만하고 온 가족이 모여 예를 올리는 행위는 단순히 조상을 기리는 의례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가족 간의 우애와 화목을 확인하는 자리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형제자매들이 결혼이나 생업으로 각지에 흩어져 살다 보니,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경조사 외에는 얼굴을 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부모님 기일은 그나마 정기적으로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날이다. 그러나 합설을 하게 되면 그마저도 한 번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제사의 방식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가족이 만날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문제로 이어진다.

농경 사회의 대가족 제도가 산업화 이후 해체되고, 오늘날에는 디지털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다. 지구촌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었지만, 가족의 연대감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흔히 “사촌도 남이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남이 어려운 시대일수록 가족 간의 우애를 지키는 장치가 필요하다. 기일 제사는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기일을 지키는 일은 때로는 불편하다. 제사 준비에 드는 수고와 생활의 제약이 뒤따르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제사를 모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선조에 대한 추모의 정성과 더불어 가족 간의 유대와 화합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기일을 지키는 의무가 사라진다면, 결국 가족은 핵가족 단위로만 남게 되고 친족 간의 관계는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제사는 단순히 조상을 기리는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형제자매 간의 정을 되새기며, 공동체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기제사는 흩어진 가족을 다시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며, 화목을 지탱하는 토대다. 시대가 변해도 이 끈과 토대가 이어질 때 가족은 비로소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결국 기제사는 과거의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오늘날 가족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장치다. 시대가 변해도 가족의 연대와 화합을 지키는 힘은 바로 이런 의례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