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나이를 묻지 마세요”

“나이를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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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더 할수록 꾸준히 성장하려 노력하고 일상을 가꾸어 나가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아름다운 궤적을 그려낼 수 있다.

전병열 언론학박사/수필가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왜 반말이세요?” 그는 순간 당황했다. 고향 모임에서 후배 친구들과 화기애애하게 주담(酒談)을 나누다 어느 후배 친구가 언짢은 표정으로 반문해 왔다. 그는 평소 반말을 많이 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라 조심하는데 술자리여서 방심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그의 후배가 정색하며 “아차! 내가 실수했네. 이분은 제가 모시는 형님으로 우리보다 10년 연배이시다.” 그러자 좌중이 술렁거렸다. “우리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대선배라니…”. “형님 죄송합니다. 몰라뵀습니다. 당연히 말씀 낮추세요.”

그가 종종 겪는 에피소드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죄(?)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간혹 오해하고 그의 언행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전에 넌지시 나이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공적인 만남일 경우는 프로필을 미리 확인하기 때문에 나이로 인한 오해가 없지만, 사적인 경우는 미리 나이를 알려주지 못해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나이는 못 속인다”는 속담도 달라져야 할지 모른다. ‘나이를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행동의 이모저모에서 그 티가 반드시 드러나고야 맒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언행까지도 나이에 맞추면 외모로는 나이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는 이런저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나이를 먼저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의 외모는 선천적일 뿐 전혀 동안(童顔)이고자 노력한 적이 없다.

소싯적에는 나이를 들어 보이고자 스타일에 신경을 쓴 적도 있었다. 나이가 어리면 얕잡아 볼까 봐 의도적으로 나이를 높이고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는 나이를 어리게 보이려 외모를 가꾸기 시작했다. 나이가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잊고 살고자 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주변에서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자위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요즘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외모보다 나이를 높게 짐작한다.

왜 사람들은 나이에 연연하는 걸까. 나이는 단순히 태어나서 살아온 햇수를 일컫는 것인데, 마치 나이가 인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관심을 가진다. 젊어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나이가 인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살아온 행적과 미래의 삶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식이 더할수록 마모되고 부식되는 기계처럼 인간도 다를 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지혜가 쌓이고 체험으로 얻은 인생길은 더욱 안락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수명이 짧아질지 우려하는 부분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로 인해 고장 난 인생을 안간힘을 쓴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순리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이를 떠난 인생길을 찾는 것이 ‘생각하는 갈대’가 아닐까.

나이를 더 할수록 꾸준히 성장하려 노력하고 일상을 가꾸어 나가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아름다운 궤적을 그려낼 수 있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만들면 새로운 삶의 목표가 세워질 수 있다. 늘 일상에 쫓기는 삶의 살아온 그는 버킷 리스트를 모두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도전하고자 한다. 해보고 싶었던 일들, 가지고 싶었던 것들, 가고 싶었던 그곳에 가보고자 노력하며, 결코 나이를 핑계 삼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가치 있게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것이냐는 것이다. 가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는 삶의 가치를 후회하지 않도록 사는 것이 가장 값진 가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후회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후회 없는 인생을 추구하다 보면 더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나이로 인한 체질의 변화를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고, 의지와 노력으로 건강을 관리하면 주어진 수명만큼 살 수 있다. 그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가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자 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버리기는 어렵지만, 연륜이 쌓여가는 만큼 그동안 익힌 지혜를 슬기롭게 펼쳐나가면 결코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