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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열 에세이] 1박 2일 패키지여행에서 남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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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패키지 관광요금은 1인 25만 원 정도로 만만찮은 금액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노인복지 ‘바우처’가 이런 때 필요하지 않을까.”

평소 패키지여행을 달갑지 않게 생각해 왔다. 얽매인 일상에서 해방된 기분으로 여행을 가는데 단체여행은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 절감 등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모처럼 떠나는 여행을 단체 행동으로 규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 친목모임에서 1박 2일 패키지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아내의 강권(?)이 발동됐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게 됐다. 부산에서 출발해 강원도 시골 일원으로 떠나는 장거리 코스다. 주말은 대부분 부산이나 고향 함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인데 이날은 그런 여유마저 빼앗겼다.

새벽 6시 출발해서 다음날 오후 8시에 귀가한다는 빡빡한 일정표대로 따라야 한다. 아내는 새벽 4시경부터 서둘며 부산을 떨고, 덩달아 보조를 맞춰야 했다. 서면 로터리 주변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관광버스가 줄지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일행을 찾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가이드들은 예약된 고객들의 탑승을 안내하느라 목소리를 높인다. 연로한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라 예약버스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버스는 동래와 울산에서 예약된 고객을 태워 빈자리가 없었다. 여행사에서 수지를 맞추고자 빈 좌석을 채우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였다. 언양휴게소 돌아와 여행사에서 준비한 아침 식사를 했다. ‘시장이 반찬’인지 야외 벤치에서 먹는 주먹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차창으로 펼쳐진 단풍이 절경을 이루며 삼매경에 젖어들게 한다. 선팅된 유리창이 단풍 농도를 더욱 선명하고 붉게 채색한다. 게다가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다 보니 온 계곡이 붉게 타오르는 것 같은 광경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아내의 탄성을 들으며, 절경에 취해 가을의 정취를 한껏 향유해 본다. 엇비슷한 풍경이 이어지는 가운데 차츰 명상 속으로 빠져든다. 상쾌한 마음에 울적했던 지난 시간들이 녹아들고 미래의 비전들이 용트림을 한다. 모처럼 힐링 여행의 진미를 느끼게 한다.

관광버스가 영주시 풍기 인삼시장에 정차하면서 상념에서 깨어났다. 인삼 매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관광객들을 호객한다. 일행 120여 명이 인삼시장에 들러 다소의 인삼을 구입한다. 관광버스들을 이곳으로 유도한다면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물량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식으로 인삼정식(2만원)이 예약돼 있었다. 돌솥밥에 인삼 몇 조각이 들어 있었지만, 건강식이란 이미지가 구미를 당겼다. 맞은편에 앉은 동료는 돌솥에 인삼이 없다며 투덜거린다. 예약된 단체 손님이지만,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이해하고 먹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흐려졌다.

영주댐 용천루 출렁다리를 걸었다. 호수 중앙으로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주변 경관은 절경이다. 하지만 넉넉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다음 일정이 바쁘다며 가이드가 독촉을 하기 때문이다. 단풍으로 물든 산과 계곡은 장관을 연출하지만, 눈으로 훑고 지나가면서 미처 감동을 느낄 여유가 없다. 단체관광의 맹점이라는 생각이다. 깊은 산 계곡으로 갈수록 단풍이 짙게 물들어 천혜의 경관을 연출하지만, 차창으로 감상하는 데서 만족해야 했다. 한반도 지형이 내려다보이는 정선군 ‘병방치스카이워크’를 방문했지만, 가이드의 독촉에 ‘수박 겉핥기’로 내려와야 했다.

이번 1박 2일의 백미는 야외 바비큐 파티였다.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무한리필 되고 주류와 음료를 지참할 수도 있으며, 부족하면 매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일행들은 “소고기가 질기다”면서 몇 점 먹고는 “공짜가 그렇지 뭐”라며 실망스런 표정이다. 이어진 ‘7080 놀이마당’은 노인들의 천국이었다. 대부분의 여성 시니어들이 무대 앞 광장을 차지하고 트롯에 맞춰 흥청거린다. 그동안 억압된 심신을 이곳에 모두 내려놓고 자유를 만끽하며 진행자의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어 불사른다. 힘겹게 살아온 시니어들의 한풀이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귀향길에 항골 계곡 트레킹과 왕피천 케이블카 등을 체험했다. “젊은이들이 단체관광을 안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단풍놀이 가는 거지.” 어느 노인의 목소리에 수긍이 간다. 1박 2일 패키지 관광요금은 1인 25만 원 정도로 만만찮은 금액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노인복지 ‘바우처’가 이런 때 필요하지 않을까. 가이드는 촉박한 일정에도 지자체에 제출하기 위해 단체 인증샷을 찍는다. 지자체나 식당에는 소위 송객 수수료도 있을 텐데,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도록 여행사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병열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