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열 칼럼] 장수(長壽)보다는 건강수명을 늘려야
“세월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 기능도 당연히 노후 될 것이다. 안 쓰면 녹슬고 많이 쓰면 닳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정기 건강검진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검진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의례적인 검사로만, 받아들였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건강 검진일이 다가오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건강검진일이 기다려지면서 불안하기도 했다. 특히 위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을 받을 때는 검사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긴장이 된다. 과음이 건강에 해롭다는 주치의의 경고를 들었지만, 그렇게 주의 깊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잦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지만, 혹시 건강 검진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 시작했다.
위내시경 검사에서 위축성위염 증세가 발견되고, 대장내시경에서 용종이 생겼다는 검진 결과를 통보 받으면서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건강검진에는 유달리 긴장하면서 검사 준비를 했다.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최근 1~2년 사이에 가까운 지인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평소 자주 어울리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지인들이 떠나고부터 나에게도 그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건강 염려증이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 주변 상황이 건강 염려증을 유발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지인의 부음 소식을 접하면 병명과 나이를 먼저 살피게 된다. ‘인명은 재천’이라며 애써 자위하면서도 절주를 의식하고, 운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는 지인들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진단해 보기도 한다.
모든 생명에는 수명(壽命)이 있다. 인간도 수명을 다하면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생명을 가진 만물에 영원불멸은 없다. 인간은 저마다 수명을 갖고 태어나지만, 수명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환경과 문화에 따라 인간의 수명이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밝힌 올해 통계 분석에 의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OECD 국가 평균인 80.5년보다 3년이 길고, 가장 긴 일본 84.7년보다는 1.2년이 짧지만, 세계 2위다. 10년 전 80.2년보다는 3.3년이 늘었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66.3세로 17.2년을 유병(有病)으로 살아가야 한다. 기대수명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쉽게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칫 장수 인생으로 축복받기는커녕 병마와 싸워야 하는 불행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수명이란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뺀 기간으로 건강하게 산 기간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금연, 절주, 운동, 체중, 식단 등 다섯 가지를 잘 지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 주변에서 짜게 먹지 말라는 충고를 자주 듣는 편이지만, 쉽게 입맛이 바뀌지 않는다. 나름대로 식단 관리를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건강한 삶은 먹는 즐거움도 있어야 한다는 아집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단백질인 육류는 평소 과잉 섭취하지 않는 편이지만, 건강 보조식품은 갈수록 많이 먹는 것 같다. 건강 보조 식품의 과잉 섭취는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새기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양이 늘어난 것 같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소망이지만, 질병과 사고는 인위적으로만, 극복할 수 없다. 세월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 기능도 당연히 노후될 것이다. 안 쓰면 녹슬고 많이 쓰면 닳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코로나19처럼 예기치 않은 바이러스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고 질병과 사고를 예방하면서 건강 수명 늘리기에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