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니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천천히 다가온 버스는 할머니가 있는 정류장 앞에 정확히 멈춘다. 차내에는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있지만 운전석도 없고 핸들이나 브레이크도 없다. 운전기사가 없이 정해진 루트를 도는 자율주행 버스인 것이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으면 문이 닫히고,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출발한다. 할머니 걸음으로 30분이 넘게 걸리던 기차역까지는 이제 5분이면 갈 수 있어, 큰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기가 더 편리해졌다.
위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일본 동북지방 이바라키현 외곽에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자율주행 버스 운행이 시작된 사카이 마을은 인접해있는 역이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거나 주민들이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다수의 비도시권 지역이 그렇듯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문제를 안고 있어, 대중교통을 증차하기에는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사카이 마을은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BOLDLY와 반도체 회사 마크 니카와 손을 잡고 지난해 11월 시범 운행을 시작해 올해 1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자율주행 버스는 총 3대. 버스는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와 3차원 레이저 레이더 등을 사용하여 장애물을 감지하면서 자동 주행한다. 버스는 시내 중심에 있는 역과 은행이나 초등학교, 우체국, 슈퍼, 병원 등 총 왕복 5km를 시속 20km로 30분 마다 1대씩 운영한다. 주민들은 “옆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라고 크게 기뻐하고 있다.
일본은 자율주행차량에 대한 경험을 꾸준히 축적해 나가고 있었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심화하고 있어 자율주행차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지 않은 지방 도로를 대상으로 일반인 대상 자율주행 버스 실증실험도 수차례 진행했으며, 많은 지자체에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속도가 일본보다 더 빠른 우리나라는 어떨까?
통계청이 2015년에 실시한 농림어업총조사(5년 주기 조사)에 따르면 전국 3만6792개 행정리 가운데 2349곳은 시내버스가 없고, 하루에 1∼3회 운행하는 마을도 4390곳에 달했다. 버스 운행 횟수가 하루 10회 미만인 마을은 1만9854곳으로 절반이 넘었다. 농촌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버스회사가 점차 노선을 없애거나 감축한 탓이다.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는 ‘국민은 대중교통서비스를 제공받음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농촌을 포함한 지방은 사정이 그렇지 못한 셈인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행복택시나 콜버스와 같은 사업을 진행하며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나서고 있다.
행복택시는 기존의 택시를 이용해 시내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마을 주민이 읍·면 소재지로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경북 안동 등지에서 도입되고 있다. 안동은 특히 올해 1월부터 이용료를 1천원에서 100원으로 인하해 주민 부담을 낮췄다.
전북 완주에서는 5개면에 10대의 수요응답형 ‘행복콜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행하고, 탑승하기 30분 전에 사전 예약하며 요금은 500원이다. 전남 신안에서도 ‘1004 버스’가 운영되며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콜버스나 행복택시와 같은 대중교통 사업도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8년 전국 82개 군 징역 전체로 확대 시행된 ‘농촌형 교통모델’ 사업이다. OECD로부터 ‘농촌정책 우수사례’로 꼽히기도 했지만, 모든 지자체가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해온 것은 아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기존 버스 회사, 택시회사와의 충돌, 지자체의 사업 운영 어려움 등의 이유로 사업을 중단하고 사업비를 반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농어촌 지역에서는 운전기사가 있는 운송수단을 이용한 대중교통을 활성화 시키고 있어, 향후 지속적으로 운영될지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의지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농어촌의 인구는 고령화하고 줄어들고 있어 수십년 안에 지역이 완전히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는 최악의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 두 사람의 수요를 위해서 복지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결국에는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적절한 운영 방법을 모색해야하며, 크게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전기차 형태의 자율주행차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시 구좌읍은 연내로 무인 자율주행 셔틀을 도입할 예정이다. 구좌읍 세화리와 상도리, 하도리, 종달리, 송당리에 분야별 5종의 서비스를 유치하는 ‘2020년 스마트빌리지 보급·확산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주민 복지향상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제주해녀박물관에서 세화 해녀잠수촌까지 편도 1km가량을 운영한다.
제주는 도심권이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짧은 일정으로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편이다. 이에 20대 청년들은 면허가 별도로 필요 없는 스쿠터를 빌리거나 이동 동선을 짧게 계획하고 있다. 새로 도입할 예정인 자율주행 셔틀은 해녀박물관과 해녀체험촌을 아우르며 세화오일장까지 둘러볼 수 있어, 지역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만족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제주를 제외하고 현재 자율주행 버스가 논의되고 있는 곳은 대다수 도심이다. 기존의 대중교통 인프라 사각지대에 있는 지역이 대다수로, 대표적으로 서울 상암, 세종, 울산, 부산 에코델타시티 등이다.
자율주행 버스를 막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통신 기반 환경이 좋다. 자율주행차 자체가 아직까지는 안정성 테스트와 상용화를 위한 시스템 점검 및 기술 보완을 하는 단계이지만,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을 다시 활성화 시켜줄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 될 가치는 충분히 있다. 환경친화적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며, 지자체의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자율주행차가 농어촌을 누비는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