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징벌적 손해배상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병열 칼럼] ‘징벌적 손해배상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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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주장한 “진실과 허위를 공개적으로 대결하게 하는 것이 진리를 확보하는 최선”이라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인터넷상 허위·왜곡 정보를 악의적·고의적으로 게시해 피해를 준 경우 피해액의 최대 3배를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이를 기존 언론과 포털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이런 내용이 담긴 언론 중재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언론 개혁 법안’을 회기 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야당은 ‘언론 개악’,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법조계와 언론계에서도 과잉입법으로 ‘언론 재갈 물리기’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고문에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짜뉴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이상으로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억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안 검토 보고서도 “민법상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분 제도와 중첩되어 헌법상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미 언론중재위 · 방송통신심의위, 형사 고발, 민사상 손해배상 등 처벌·구제 절차가 충분히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단체들은 “언론 자유와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했다. 크기·분량 등 정정 보도에 대해서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 문체위는 “언론에 과도한 부담”이라고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적ㆍ악의적ㆍ반사회적 의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배상을 하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는 보상적 손해배상과는 달리,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함으로써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상황을 막고 다른 사람이나 기업 등이 유사한 부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기 위한 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 미국에서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때문에 형사처분 대신 극히 제한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사실 그동안 언론이 허위 · 왜곡 · 과장된 정보를 악의적으로 기사화해 피해를 입힌 사례는 부지기수다. 당연히 SNS 등에 고의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행태는 근절시켜야 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언론개혁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할 있지만, 표현의 자유 또한 기본권이다. 자칫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 SNS, 1인 미디어 등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검증되지 않은 쓰레기 정보가 범람하고 있다. 그나마 기성 언론은 기본적인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고의적이지 않는 한 허위 정보가 노출되기는 쉽지 않다. 반면 1인 미디어 등은 검증 체계를 갖추지 못해 진위 여부를 판단해 게재하기보다는 선정적인 내용에 치우치기가 쉽다.

문제는 순수한 언론개혁 차원에서 가짜뉴스를 선별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처벌한다면 가짜뉴스 유포자에게 경종을 울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악용할 여지를 포함시킨다면 권력자나 금력자는 위력으로 가짜뉴스라는 빌미를 만들 수도 있게 된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은 사회 지도층에 대한 비판이고 권력에 대한 감시다.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 정의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필요에 의해 가짜뉴스로 치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참과 거짓이 범람하는 가운데 기업이든, 정부든, 시민단체든 누군가가 가짜뉴스의 판관 역할을 하겠다면 여론은 왜곡되기 시작한다. 진실을 가려내는 역할은 여론 시장에 맡겨야 한다. 사상의 자유 공개 시장은 인간이 이성에 의해 정사(正邪)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하면 자연히 진실하고 건전한 사상은 생존할 것이며, 불건전하고 허위적인 것은 소멸하게 된다, 정부가 미디어에 대해 간섭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주장한 “진실과 허위를 공개적으로 대결하게 하는 것이 진리를 확보하는 최선”이라는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허위의 의견이든, 진리의 의견이든 제한 없이 표현돼야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제인지 곱씹어 봐야 한다. 오로지 언론개혁만을 위해서라면 기존 법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칫 권력과 금력의 비위사실을 밝힌 기사가 가짜뉴스로 매도돼 징벌적 손해배상의 희생물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