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지방대를 나온 청년들조차 대학을 졸업하면 서울로 향한다. 사람이 너무 많은 서울과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든 지방,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격차는 과연 좁혀질 수 있을까?
인구의 절반은 수도권에 산다
2020년 12월 31일 행정안전부는 우리나라 인구 중 50.2%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고용정보원도 전국 시·군·구 266곳 중 46%인 105곳을 소멸위험지역으로 꼽았고, 국립산림과학원 역시 466개 읍·면 중 96.8%에 해당하는 451곳이 30년 안에 소멸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지방의 인구격차가 심각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한민국 인구는 줄기 시작했다. 2020년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3% 증가했지만, 출생자수는 10% 감소해, 전체인구는 2019년 대비 2만838명이 줄어들었다.
급증하고 있는 것은 1인 가구다. 2020년 말 1인 가구 수는 900만을 돌파하며 1인 가구 천만 시대가 목전에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 것은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이 전국보다 높으며, 여성 1인 가구는 20대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다
저출산이야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육, 일자리 등 보다 나은 삶의 조건이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지방에서 거주하며 지방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은 구직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한계를 더 크게 체감하고 있다.
지방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은지씨는 구직활동을 하면서 결국 서울행을 택했다. 지역의 기업들은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 아닌 일까지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 6일 근무에 수당 없는 야근, 구시대적인 기업문화 등에 지쳤다. 김씨는 “서울의 주거비용은 비싸지만, 급여대우도 지방보다 낫고, 커리어를 쌓기에도 좋아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사이트의 채용공고만 살펴보아도 청년 일자리 10개 중 8개가 수도권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자리 질 지수’ 상위권으로 분류된 곳 중 82%가 수도권이었다. 일자리 질 지수는 고소득, 고학력, 고숙련 비중이 얼마나 높은가를 기준으로 측정되어 있다.
지역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고, 지역 중소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채용하려는 기업이 지역에 있어도 청년들이 외면하는 것은 임금과 고용안정성, 조직문화 등 노동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도시는 지방이 아니다
지역일자리 확보를 위해 전국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정책이 펼쳐졌고, 그 결과 10개 도시에 150여개 기관이 이전을 완료하였지만, 이 정책이 곧바로 청년 일자리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방 이전 공공기관 중 정부부처 소속기관을 제외한 109곳에서 2018년 신규 채용한 인원 1만 4338명 중 지역 출신은 그 중 14%인 2011명에 그쳤다. 주말이면 혁신도시와 수도권을 잇는 고속버스가 줄을 잇고, 휑한 거리에는 오래된 임대 팻말만 나뒹구는 곳도 적지 않다. 혁신도시가 생겨도 결국에는 지역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구도심에서 신도시로 이주하는 형식으로 지방도시 공동화 현상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방 내에서도 구도심과 신도심 간의 경제구조와 지역주민들의 삶의 지수는 점점 간극을 보이고 있고, 이와 같은 구도심 공동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단순한 재건축이 아닌 경제기반형, 일반근린형, 주거지 지원형, 우리동네살리기형, 중심시가지형 등 다양한 방향으로 접근되고 있다. 하지만 가속회되는 지방 공동화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농어촌에 경우에는 해마다 빈집이 늘어가며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기조차 어렵다는 문제가 크다.
늘어가는 빈집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7~9월 조사한 결과 농촌 빈집으로 분류되는 곳은 6만1317채에 달한다. 나이가 들면 병원 가까이에 살아야 하지만, 농촌은 응급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청년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도, 노인들이 삶을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생활기반 시설도 부족하다보니 빈집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갈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 인구집중 현상이 심각한 일본은 이미 2013년 전국의 빈집 수가 820만채로 전체의 13.5%에 달했다. 일본의 대부분 지자체는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아키야 (空家) 뱅크’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도심의 빈집은 고민가(古民家)카페 등 리모델링을 통해 수익으로 창출되기도 하지만, 시골 오지에 있는 빈집은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활용방안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이에 지자체가 빈집 관련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려 매수·매도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소개하고 있는 빈집을 빌리는 경우에는 수수료를 지불해야하지만, 영리 목적이 아닌 빈집 뱅크를 이용하면 중개 수수료가 필요 없거나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자체 역시 빈집을 이용해 사업을 전개하거나 지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이나 이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새로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어, 여러 가지 지원 정책을 전개하기도 한다.
도쿄도 오쿠타마 지역에서는 올해부터 ‘0엔 빈집뱅크’를 시작해 빈집을 무료로 양도하고 싶은 사람과 낡고 불편한 집에서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연계하는 제도인 파격적인 3제도를 시작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의 대책으로 22년간 정착한다는 조건으로 집을 무상으로 양도하기도 하고, 45세 미만의 부부의 이주를 촉진하는 ‘청년용 빈집뱅크’ 제도를 도입해 빈집 활용을 촉구했다. 오쿠타마 지역의 마을 청년 정착 추진과 담당자는 “별장과 작업실, 창고 등의 용도로 빈집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천시도 이같은 해외 사례에 착안하여 지난해 10월 빈집뱅크제를 도입했다. 시는 빈집 중 활용이 가능한 곳을 찾아 은퇴자, 청년 등에게 연결해줬고, 이는 원도심 빈집수가 2014년 156채에서 최근 6채로 크게 줄어드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지역에서 발생한 범죄도 2014년 100건에서 2018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도권 집중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서 청년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역에서도 다양한 일자리가 생겨야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수도권 위주에서 벗어난, 지역에서도 실현 가능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선택지가 넓어져야 할 것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