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변화의 바람, 이제는 ‘워케이션’

변화의 바람, 이제는 ‘워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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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휴가철이라고 하면 7,8월 여름 시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가을이나 겨울에 늦은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북적이는 인파와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고 한가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과 직장에서 잠시 벗어나 리프레쉬, 재충전을 도모하는 시간은 점차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국에서는 쉬면서 일하는 ‘워케이션(Worcation)’이 새로운 휴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휴가지에서 업무를 하는 것도 급여를 발생하는 일로 인정한다. 휴가지에서의 숙박비나 여행비 등은 직원부담이지만 근무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휴가일수가 차감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사무실 대신 휴가지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일하며, 메신저를 통해 직장상사 및 동료와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있고, 컨퍼런스콜을 비롯한 원격 소통이나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워케이션이 가장 먼저 도입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여행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들의 평균 휴가는 2000년에는 20.9일이었으나 2013년에는 16일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쉬는 동안 업무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기에, 직원들이 상사에게 일과 휴가를 결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계기였다. 여기에 원격근무 시스템의 발전이 불을 지폈다. 일부 기업들은 직원들을 위한 혜택으로 워케이션을 내세우기도 했다.

워케이션의 기반에는 ‘디지털 노마드’가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 노마드란 일과 주거에 있어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도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들을 뜻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같은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여 정보를 끊임없이 활용하고 생산한다. 대표적인 직업군으로는 인플루언서, 마케터, 웹디자이너, 유튜버, 작가,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등이지만, 최근에는 쉬는 동안 업무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직장인들도 디지털 노마드안에 포함되는 추세다.

특히 올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통상적인 원격근무가 보편화되면서 근로자들은 평일에도 사무실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됐다. 이처럼 사무공간의 자율성과 근무 방식의 유연성이 확대되면서 재택근무를 넘어 휴가지에서 업무를 하는 근무 형태가 부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일본은 정부가 앞장서서 워케이션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일본의 워케이션 장려는 최근 도입된 ‘Go to travel’ 정책과 연결된다. 아베 전 총리가 집권하면서 관광청을 설치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광산업을 적극 활용했으나, 코로나19 이후 방일 외국인 관광객이 99% 감소하며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에 재택근무를 장려하고 있는 회사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지역의 숙박업과 관광상품을 연계한 워케이션을 장려하게 된 것이다.

특히 도쿄도는 지난 6월 코로나19가 대대적으로 확산했던 시기에 텔레워크(원격근무)를 도내 호텔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워케이션의 첫걸음을 뗐다. 거주하고 있는 집에서 인터넷 환경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텔레워크를 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직장인들의 수요가 발생했고, 마침 외국인관광객의 감소로 인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던 호텔업계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객실에 조성하며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텔레워크용 객실은 침대가 없으며, 오전 9시부터 체크인, 체크아웃은 오후 10시로 최대 13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고, 라운지에서 간식과 맥주도 제공된다. 도쿄는 텔레워크에 적합한 숙박시설을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 ‘호텔 워크 도쿄’를 개설, 현재 514개의 호텔이 등록되어 있다.

지방에서 가장 활발하게 워케이션 전략을 펼치고 있는 곳은 와카야마현과 홋카이도다. 와카야마현의 시라하마 리조트지구는 이미 2017년부터 많은 기업들과 제휴를 진행하고 있다. 한 IT업체는 사무직과 영업직 직원들이 3개월씩 교대로 근무하며 해안가 리조트에서 근무 외 시간에는 서핑이나 온천, 골프 등의 레저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이곳은 워케이션의 성지가 되어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고객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고급 전통 여관 스타일을 추구하는 일본 유명 호텔 업체인 호시노리조트가 홋카이도에서 운영하는 ‘OMO7’은 워케이션을 지역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독특한 전략을 내세웠다. 일본에서도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홋카이도에서 살아보는 ‘워킹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첫단계로, 실제 거주하는 주민처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워케이션으로 부상하고 있는 와카야마와 홋카이도의 공통점은 인구감소가 가속화 되고 있고, 관광산업을 제외하고는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지방자치단체들은 워케이션 확산을 위해 2019년 7월 전국 단위 조직인 워케이션지자체협의회를 출범했다. 와카야마, 나가노현 주도로 아키타현 유자와시, 시즈오카현 시모다시,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쵸, 와카야마현 다나베시 등 일본 광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참가했다. 한 호텔 업계 관계자는 “워케이션은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 갭을 해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며 관망했다.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서 워케이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은 미비한 상태다.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몇몇 공기업은 수 년 전부터 ‘워케이션’을 포함한 ‘집중휴가’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권장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2016년부터 1달간 ‘워케이션’ 기간을 정하고 실천해오고 있다. 공식 일정을 잡지 않도록 유도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직원들 휴가도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도록 장려한 것이다. 또 한국화학연구원과 ETRI,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전직원이 휴식기에 들어가는 ‘집중휴가제’를 2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워케이션이 마냥 긍정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2주간의 워케이션을 다녀온 일본 현지 기업에 종사중인 K씨는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K씨는 “여행지에서 일을 하는 느낌이라 업무에 집중하는 데 힘들었고, 업무 시간이 끝나고 여가를 즐기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K씨의 동료 역시 “워케이션은 완전히 처음 접해보는 근무형태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무기력증이 심해지고 근로 의욕이 저하되는 ‘번아웃증후군’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업무 환경을 바꾸는 워케이션이 도움이 된다. 새로운 환경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 밖에서도 자유롭지 못해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점은 직장인들에게는 되려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워케이션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지만 근로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 패턴은 해외에서 국내로, 모험에서 안전에 대한 니즈로 바뀌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로 집안에서만 갇혀 지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지쳤다. 호텔이 단순한 숙박업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일하면서 휴식할 수 있는 일상 밀접형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도 있다.

일도 휴식도 코로나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시점을 바꿔 안전하게 일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