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메이커 문화 확산을 통해 다시 한번 일어서자

메이커 문화 확산을 통해 다시 한번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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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욕에서 2015년에 개최된 Maker Faire에 몰려든 인파
출처: 플리커(https://www.flickr.com)

코앞까지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어디로 갈 것인가?

작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y Forum)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이 핵심주제로 논의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과 로봇,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의 정보 통신 기술이 전통 산업과 융합함으로써 경제생태계에 크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견되며, 특히 고급 일자리에 해당하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의 전문가 직업과 생산직근로자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분석이 우리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 뒤이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대결 때문에 앞으로 닥칠 현실의 문제들이 일반인에게까지 익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 역시 존재한다. 제4차 산업혁명과 인더스트리 4.0으로 인해 과거 대세를 이루었던 소품종 대량생산체계(삼성은 2015년 1분기에만 스마트폰을 8,000만 대를 팔았다)가 다품종소량생산체계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몇몇 디자인만 있으면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데 지장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에 맞춘 수많은 디자인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바야흐로 디자인의 빅뱅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생산은 비록 로봇이 담당한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이를 위해 제품이 어떤 기능을 제공해야 할지, 어떤 모양을 가져야 할지는 모두 인간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과거 한 가지 디자인으로 1,000만 개를 생산하였다면 앞으로는 100가지 디자인으로 10만 개를 생산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이에 따라 수많은 제품 설계와 디자인을 위한 인력이 필요하다. 3차 산업시대에는 인터넷이 유통업에 있어서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롱테일 경제(long tail economy)를 열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에 힘입어 제조업에 있어서의 롱테일 경제가 나타날 것이다.

메이커운동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원동력

메이커운동은 약 10년 전쯤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메이커페어 개최, 메이크 잡지 발간, 팹랩과 테크숍의 오픈, 3D 프린터와 아두이노와 같은 오픈하드웨어의 등장에 따라 종합적으로 나타난 거대한 움직임이다. 과거 장인(匠人)이 만들어 제공하던 각종 장치와 물건들은 영국에서 촉발된 산업혁명과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체계를 거쳐 새로이 제작되었다. 인간이 결코 기계의 생산성과 정교함을 따라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공장과 함께 등장한 부설연구소에서 제품에 대한 설계와 디자인이 이루어짐에 따라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3D 프린터, 레이저커터, 아두이노, 탁상형 소형공작기계의 등장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누구든지 자신이 구상한 바에 따라 시제품을 제작하고 더 나아가 판매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간다. 이렇게 만든 제품이 시장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전통적인 대량생산 체계에 따라 값싸고 더 정교하게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메이커페어(Maker Faire)는 메이커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 형태의 행사로, 누구나 각자 만든 시제품을 소개하고 배우며 함께 즐기는 플랫폼이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봄과 가을에 각기 열린다. 이틀간 진행되는 행사에는 15만 명 이상이 모이는데, 이들 중 60% 이상은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 참석자이다.

메이커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선진국

주요 선진국들은 이렇게 중요한 메이커운동의 지원에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미국을 메이커나라(A Nation of Makers)라고 선언하고 6월에 백악관에서 메이커페어를 개최하였다. 그 이후, 매년 6월 중 한 주를 메이커위크로 정해서 백악관 주관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의 메이커 정책은 우선 메이커스페이스를 많이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초·중·고 및 대학의 도서실, 미술실, 컴퓨터실을 개조해서 메이커스페이스로 전환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많은 기업들 역시 자발적으로 이를 지원할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메이커스페이스를 만들어 공공에 개방하고 있다. 이러한 메이커운동은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강화된 미국의 과학기술 교육정책인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교육과 맞물려 교육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메이커운동과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일자리는 가장 양질의 일자리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국가적으로 필요한 인재 공급의 중요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교육계에만 맡겨놓고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정부 산하기관의 20만 명의 과학자, 학자들에게 총 100만 시간을 투입하여 자발적으로 학교나 메이커 현장을 찾아가 STEM 교육과 메이커 교육을 지원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메이커운동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영국은 5세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2014년 영어, 과학, 수학, 스포츠와 함께 컴퓨터 과학을 5대 핵심과목 중의 하나로 지정하였다. 컴퓨터 교육은 단지 코딩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와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 데이터 분석 능력을 가르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핵심적인 능력을 갖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마이클 고브 영국 교육부 장관은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지 않으면 21세기를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스라엘은 이보다 훨씬 전인 1994년부터 SW교육을 정규교육과정에 포함하였으며 고교과정에서는 총 5단계(단계별 90시간)로 교육을 실시하고 고등학생 중 절반이 3단계까지의 소프트웨어 교육을 이수한 뒤 졸업한다고 한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역시 메이커운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2014년 9월 다보스포럼에서 대중창업, 만중창신(大衆創業, 萬衆創新·雙創)이란 말을 사용한 이후 중국은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2018년까지 중국 전역에 28개의 창업 시범기지를 만들기로 하였으며 알리바바와 칭화대 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시범기지를 구축하여 제공함으로써 누구나 손쉽게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선도하는 것이 바로 메이커스페이스이다. 대학에 설립한 대표적인 메이커스페이스로는 1만6500m2 규모에 이르는 칭화대 I 센터를 들 수 있다. 주로 전자공학 중심대학이나 학과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으로, 설치 과정에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의 경계가 점차 무너져 가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국정목표로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표방하였다. 창조경제란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경제 운용을 통해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정부는 우리나라 판 메이커스페이스라고 할 수 있는 무한상상실을 전국적으로 개소하였고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구축하여 아이디어 도출에서 창업까지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하부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20세기의 경제우등생, 대한민국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20세기 중반 세계 최빈국 위치에서 20세기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추격형(fast follower) 모델로 발전한 우리 경제는 이제 과거 모델로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갈림길에 서 있다. 안으로는 대기업 편중의 경제 구조와 함께, 밖으로 핵심원천기술로 무장한 미국, 독일, 일본과의 경쟁에서, 값싼 인력과 높은 기술력으로 우리를 추월한 중국과 세계의 생산기지화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우리도 이미 오래 전에 아이디어와 원천기술에 기반을 둔 선도형(first mover) 모델로 전환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성공 경험에 취하여 아직까지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가 다시금 도약하고 새로운 성공신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이를 메이크(make)라는 행위를 통해 창조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교육혁신과 인재가 구체화한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연결되도록 기반이 되어주는 메이커스페이스의 확산이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초·중·고 공교육에서의 소프트웨어 과목을 도입하고 무한상상실, 창조경제혁신센터, 콘텐츠코리아랩, K-ICT 디바이스랩 등 많은 메이커스페이스를 만들고 있지만 이들은 필요조건일 뿐 성공을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우등생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결합되고 융합되는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결국은 시설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이다. 각 개인이 다양성과 함께 어떤 능력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소통과 협력을 통해 각각의 다양한 능력을 집약해 내는 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쟁에 반하는 소통과 협력은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이를 고려할 때, 소통과 협력을 핵심으로 삼는 ‘메이커 문화’의 확산이 우리의 문화정책과 교육 분야에 제시하는 시사점을 좀 더 깊이 고찰할 필요가 있다.

글 ․ 함진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글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관광 웹진

* 함진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양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사, 전자통신공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당시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에 입소해 비디오텍스단말기를 개발했고, 하이퍼미디어문서처리서비스, IPv6 대용량라우터, 차세대인터넷 아키텍처, 미래인터넷 구조에 대해 연구했다. 인터넷미래기술연구부장, 표준연구센터장,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고,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청와대비서실 선임행정관(정보방송통신비서관실)으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메이커 문화의 확산, 자유학기제를 통한 메이커 교육의 실현,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교육 환경의 혁신 및 새로운 교육 방식의 도입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