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병열 에세이 l 복권에다 인생을 걸어서야

전병열 에세이 l 복권에다 인생을 걸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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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권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희망이 없는 사회가 아닐까. 건전한 사고로 삶의 의욕을 북돋우고,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복권보다 더한 인생의 행운을 얻을 것이다.”

전병열 발행이/언론학박사

점심 때 자주 들르는 식당이 하나 있다. 가성비가 높고 ‘맛집’으로 알려져 때로는 줄을 서야 하는 곳이다. 직원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식당을 처음 찾았을 때, 사람들이 50여 m 정도 길게 줄지어 있었다. 그곳이 식당인 줄 알고 뒤편에 서서 줄을 따라갔다. 점심 한 끼 먹는 데 이렇게 줄을 서야 하느냐는 불만스런 생각에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순간, 늦게 도착한 직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복권 사려고 그래요?” 알고 보니 복권 판매소로 가는 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복권 명당’이라고 써있는 창문 곳곳에는 ‘1등 당첨자 10명!’, ‘제00회 2등 당첨!’ 등의 홍보 찌라시와 스티커가 도배되어 있었다. 진풍경이라 한참 지켜본 적이 있다. 이후로 종종 그런 광경을 목격하면서 경제가 어려우니까 복권에 인생을 거는 사람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했다. 한꺼번에 수십만 원어치를 사는 사람도 보였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도 줄을 서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거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랑스럽게(?) 줄을 서 있는 것 같았다.

평소 복권에 관심이 없던 터라 그런 모습들이 낯설었다. 확률적으로 운이 따라야만 당첨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복권에 운명을 거는 짓을 터부시해왔다. 그런데 출근길에 아내가 불쑥 말했다. “회사 인근에 유명한 복권 명당이 있다던데 퇴근길에 복권 좀 사다 줘요. 어젯밤 꿈자리가 좋았어요.” 흔히 주변에서 좋은 꿈을 꾸면 복권 사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웃어넘겼었다. 아내의 부탁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복권 두 장을 사서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추첨 일을 기다리며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뭘 할까를 생각하며, 나름 꿈에 부풀기도 했다. 복권을 맞춰본 아내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기대를 접었다. 아내는 장난삼아 사본 것이라며, 미련을 가지면 더 큰 실망을 안게 된다며 웃어넘겼다. 나 역시 복권에 운명을 시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복권에 인생을 걸 수 없다는 생각에 잊기로 했다. 기대보다 실망이 더 클 것 같아 복권을 맞춰 보지도 않았다. 맞춰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내 품에 수십억 원이 있다는 상상으로만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흔히 복권 당첨은 예지몽을 꾼다는데 그런 기미는 없었다. 복권에 희망을 걸어야 할 정도라면 인생의 끝자락이 아닐까. 복권은 하나의 오락으로 가볍게 생각해야 실망하지 않는다. 복권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희망이 없는 사회가 아닐까. 건전한 사고로 삶의 의욕을 북돋우고,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복권보다 더한 인생의 행운을 얻을 것이다.

그 이후로 가끔 복권을 구입하지만, 기대에 대한 실망이 상처가 될까 봐 당첨 번호조차 알지 못한다. 어떤 때는 수십 장이 쌓이기도 하지만, 실망하는 것보다는 기대가 더 큰 역할을 한다. 때로는 품속에 수십억 원짜리 수표를 가지고 있다는 기대가 힘이 되기도 한다. 사업가들은 부도가 나는 수표도 있지만, 내가 가진 복권은 노력 없이 얻은 수표라서 부도가 나도 큰 손해는 없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운명의 결과를 알기 위해 맞춰볼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복권의 행운이 없어도 행복할 때 맞춰 보고자 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복권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능력과 의지, 노력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

오늘도 복권 명당에 줄지어 있는 그들을 보면서 복권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아니길 기대해 본다. 경제가 나아지고 국민의 삶의 질이 안정되면, 복권의 행운을 바라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절대로 복권이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삶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면, 어딘가 기대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복권에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행운은 노력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 복권 발행의 주된 목적은 공익 기금 마련이다. 복권 판매 수익은 다양한 공공 서비스와 자선 활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물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역할도 하고, 당첨의 가능성은 낮지만, 그 가능성 덕분에 기대와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복권에 중독되면 현실을 회피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게 될 수 있어, 오락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