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언행에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성찰을 한다면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의도된 행위는 범죄이지만, 단순한 실수는 반성을 통해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릴 때 반성문을 써본 기억이 있다. 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이 주먹다짐까지 이어져 선생님께 야단맞고 반성문 제출을 지시받았다. 억울하다는 생각에 “잘못했다”는 짧은 글을 써서 제출하자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에 몇 번을 고쳐 쓴 적이 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과 약속이 마음에서 우러나야 하는데 솔직히 그 당시에는 부득이한 반성문이었다.
근래에 자아 성찰의 시간이 많아졌다. 자칭 당당하게 살아온 인생으로 후회 없이 살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자신의 언행에 대해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자만심이다. 그러다 어느 날 선배로부터 충고를 들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취중이었다고 변명하면서도 그날 일을 돌이켜보면서 실언을 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며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자는 각오로 살아왔기에 과거를 의도적으로 되돌아보지 않았다. 지난 일을 후회하다 보면 매사에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나름의 소신이었다. 소싯적에 버스를 타면서 차비를 내고 내릴 때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내려 자신의 불찰을 몇 날 며칠간 후회하며 억울해한 적이 있다. 그냥 잊어버리자고 하면서도 자꾸만 기억이 되살아나 소심한 성격에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 후부터 지난 일로 후회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애써 어제 일을 떠올리지 않았다.
완전하지 못한 인생은 크든 작든 후회할 일이 늘 있기 마련이다. 과거에 연연해 오늘 지장을 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으로 살아왔다. 때로는 자신의 지난 언행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의식적으로 지워버렸다.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덤덤하게 넘기기도 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며 자위한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고, 도덕적·윤리적 사명감에 마음속으로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잘못된 언행이 실수로 용인되기보다는 인품으로 평가되고 자칫 대인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오점으로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의식적으로 자아 성찰의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인생은 반성하면서 성장한다는 진리를 터득한 것이다. 지난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고 개선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게 됐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책상 앞에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이란 고사성어를 써 붙이고 실천하려고 다짐도 해본다. 실언이 용납되던 시기를 벗어나면서 신중한 처신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농담마저도 조심스러워졌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고 내 말보다 상대방 이야기를 즐겨 듣고자 노력한다. 반드시 어제 일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살핀다. 자신의 인격 도야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을 세우고 자기반성의 시간을 할애하고자 한다. 다행히 30여 분 거리에 직장이 있어 그 시간을 통해 걸으면서 사색하고, 과오를 부끄러워하면서 개선의 의지를 다지며, 트라우마로 자리 잡지 않도록 노력한다. 자기 잘못에 지나치게 함몰되면 자격지심(自激之心)이나 열등의식으로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견강부회(牽強附會)로 순간을 모면하려는 몰염치한 인간들도 있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의 양심은 자기반성을 통해 지켜질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의 언행에 객관적이고도 비판적인 성찰을 한다면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의도된 행위는 범죄이지만, 단순한 실수는 반성을 통해 발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하루하루 부끄럽지 않은 삶을 추구하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하는 일이 또 생긴다. 자기 잘못을 모르면 반복해서 저지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 반성문을 쓰면서 초심을 잃지 않고자 한다. 오늘도 후회 없는 하루가 되기를 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