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징벌적 손배상제 누구를 위해 밀어 붙이려는가

[기자수첩] 징벌적 손배상제 누구를 위해 밀어 붙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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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가 지난 16일 여당 주도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심의·처리하려다 연기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코로나19 자가격리 문제로 회의가 열리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언론관련법을 여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적ㆍ악의적ㆍ반사회적 의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배상을 하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는 보상적 손해배상과는 달리,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함으로써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상황을 막고 다른 사람이나 기업 등이 유사한 부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기 위한 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

물론 그동안 언론이 허위 · 왜곡 · 과장된 정보를 악의적으로 기사화해 피해를 입힌 사례는 수없이 많다. 당연히 SNS 등에 고의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행태는 근절시켜야 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언론개혁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 또한 기본권이다. 자칫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법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순수한 언론개혁 차원에서 가짜뉴스를 선별해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처벌한다면 가짜뉴스 유포자에게 경종을 울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악용할 여지를 포함시킨다면 권력자나 금력자는 위력으로 가짜뉴스라는 빌미를 만들 수도 있게 된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은 사회 지도층에 대한 비판이고 권력에 대한 감시다. 가짜뉴스에 대한 개념 정의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필요에 의해 가짜뉴스로 치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언론 입법은 명확하고 공정해야 지속 가능한 제도가 될 수 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허위·조작 보도는 재산·정신·인격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악의적 오보와 가짜뉴스는 처벌하고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 그러나 손해배상 하한선을 언론사 매출액의 1000~1만분의 1로 설정하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 피‘악의’와 ‘왜곡’을 어떻게 재단할지 명확하지 않으면 소송이 남발되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까지 있는 속에서 과잉·이중 규제도 될 수 있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유튜브를 징벌에서 빼는 것도 맞지 않다. 중대한 오보나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는 입법 취지를 살려 속도보다 완결성을 중시해야 한다. 더불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수백개씩 복사 기사들이 쏟아지는 포털 개혁 법안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제인지 곱씹어 봐야 한다. 오로지 언론개혁만을 위해서라면 기존 법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칫 권력과 금력의 비위사실을 밝힌 기사가 가짜뉴스로 매도돼 징벌적 손해배상의 희생물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야가 충분히 숙의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