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열 에세이 l 추원보본의 정신도 꼰대 문화로 취급될까
“숭조(崇祖) 사상이 하나의 정신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정신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먼동이 틀 무렵 예초기를 둘러메고 부모님 산소가 있는 매실농원으로 향했다. 잡초가 허리까지 무성하게 자라 길을 막아섰다. 불과 두 달여 전 어머님 기일 때 다녀갔었는데 올해 유난히도 잦은 비가 이들의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수풀을 헤치고 옛길을 더듬으며 힘겹게 산소에 도착해보니 역시 잡풀이 무성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이라 농원 주변은 수목이 울창하게 성장해 마치 방풍림으로 둘러싸인 것 같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예초기를 돌려 잡초를 잘라 나갔다. 애써 심은 잔디를 뒤덮은 잡풀이 얄미워 더욱 깊이 예초기를 들여 밀고 뿌리째 제거해버리고 싶었지만, 힘에 부쳐 포기해야만 했다. 문득 이들도 생명이 있다는 법정 스님의 글이 떠올랐다. “그래 끈질긴 생명력을 어쩌겠느냐, 잔디도 함께 살도록 조금만 양보해라.” 중얼거리며 공생을 허용(?)했다. 매년 해오는 벌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힘겨움을 느낀다. 예초기를 내려놓고 배롱나무 그늘에서 숨을 돌렸다.
이 땅은 부모님이 애지중지 일군 우리 가족 생명의 터전이다. 불현듯 고구마를 캐던 그 시절이 소환된다. 기름진 땅이라 고구마를 풍성하게 수확했었다. 방과 후에는 이곳으로 달려와 고구마 줄기에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애기 고구마를 따서 풀잎에 닦아 먹던 기억이 농원에 펼쳐진다. 부드러운 땅속에서 겨우내 우리 식구의 양식이 될 어른 주먹보다 큰 고구마가 호미질을 할 때마다 밭두렁에 쌓였다. 어린 동생들은 흙밭에서 뛰놀고 나는 가마니에 고구마를 옮겨 담았었다. 풍성한 수확으로 주름살이 펴진 어머니의 환한 얼굴과 그때의 정겨운 풍광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뭉클하게 밀려오는 그리움,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포근한 모습은 눈에 선하다. 추억 속의 영상을 넋 놓고 즐기는데, 시원한 바람결에 들려오는 어머니의 재촉 소리에 다시 예초기를 둘러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촌들과 함께 여러 곳에 분산된 선조 묘소를 벌초했지만, 생활에 쫓겨 날짜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근래는 함께 하지 못했다. 조부모와 부모님 산소는 늦게라도 내가 하겠다며 4촌들께 양해를 구했다. 사실 혼자서 네 분 산소를 하루에 마치기는 무리였지만, 그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었다. 육남매의 장남으로 집안 대소사는 내가 챙길 수밖에 없어 줄곧 벌초는 혼자서 참여해 왔었다. 서울에 살고, 해외에 나가 있는 동생들을 부를 수 없었고 여동생들은 소위 출가외인이라 아예 참여하지 않는다. 지금은 으레 내가 하는 것으로 동생들에게 인식돼 있다.
먼 친척 어르신 한 분은 생전에 자신의 산소를 마련했었다. 그분은 아예 시멘트로 산소를 포장을 하기에 의아해했더니 “앞으로는 자식들이 벌초하기가 힘들 것 같다”라고 했다. 사실 벌초는 우애가 깊은 집안에서는 하나의 가족 행사로 치른다. 또한, 추원보본(追遠報本) 정신이 살아 있는 집안에서는 벌초는 후손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벌초에 대한 개념이나 의식까지도 변하고 있다. 물론 장례 문화도 변하고 있어, 벌초하는 가정이 점차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숭조(崇祖) 사상이 하나의 정신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근본정신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추석에는 벌초 대행업체가 성업이라고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MZ 세대 이후는 조상보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벌초 없는 가정이 늘어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줄어들고 장자 상속의 전통이 사라진 미래는 조상 무덤조차 방기할 것 같은 안타까운 생각이다. 추원보본의 정신조차 꼰대 문화로 취급될까 우려된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뿌리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글 본지 편집인 chairman@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