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 집캉스를 즐기는 사람들
계절은 한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수일 연속 전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0명을 웃돌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 공기 중에서 바이러스가 생존할 확률이 낮아져서 감염세가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는 반년 전의 예상은 빗나간 셈이다. 거기다 5월 황금연휴 등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증상을 숨기고 특정 여행지에서 여행을 하면서 지역사회 방역에도 문제를 만드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자 올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휴가를 포기한 직장인들
직장인 정다희(가명)씨는 매년 가던 여름 가족여행을 미뤘다. 원래라면 어머니 칠순을 맞아서 온가족끼리 다함께 제주도 여행을 갈 참이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은 것을 피할 수 없고, 혹시나 이후에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다희씨의 직장은 교육계열이라 비대면 수업이나 개학 연기와 같은 코로나가 몰고 온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업무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휴가를 다녀오면 맡고 있던 업무가 미뤄지거나, 다른 동료가 맡아서 진행해줘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코로나 상황이 지속된다면 하반기 교육 일정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희씨의 상황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여름휴가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거나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3일 잡코리아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과 함께 직장인 1023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계획’에 대해 물은 결과 응답자의 9.1%만이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10명중 1명도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은 셈이다.
응답자 중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하려 한다’고 대답한 직장인은 59.0%에 달했고, 올해는 따로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들은 여름휴가 계획이 있는 비율의 두 배가 넘는 22.9%에 달했다.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코로나19 확산’ 탓이었다. 응답자의 대다수(72.6%)는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어서’ 여름휴가를 포기하거나 정하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 여름휴가를 갈 계획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 93명 중 89.2%는 ‘국내여행’을 갈 것이라고 답했으며,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10.8%에 그쳤다.
꽉 막힌 하늘길, 국내 호텔 북적북적
유럽연합(EU)이 한국을 포함한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4개국 국민에 대해 입국을 허용했지만, 해외입국자 자가격리 방침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은 국내로 향하고 있다.
최근 가장 많은 여행객이 몰리는 지역은 강원도 일대다. 확진자가 비교적 적게 발생했고 캠핑장과 호텔ㆍ리조트가 많아 타인과의 접촉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강원도 평창 소재 K호텔은 성수기 예약률이 90%를 넘어섰고, 강원도 양양의 S호텔은 7월 주말까지 만실이다. 서울 도심 호텔도 상황은 비슷하다. 코엑스 인근 I호텔은 올 여름 2박 이상 예약한 고객이 작년보다 60% 늘었다.
특히 호텔업계는 호캉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겨냥해 특유의 경관과 시설, 이벤트를 내세워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해변가에 위치해 푸른 바다와 하늘, 자연 경관을 만끽하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부산·제주·강원 등 특급호텔 수영장들이 인기다.
신라·롯데 등 제주지역 주요 호텔의 이달 주말 기준 예약률은 70~80%에 달한다. 대부분의 호텔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전체 객실의 80~90%만 운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00%에 가까운 예약률을 기록한 셈이다.
홈쇼핑에서도 국내 여행상품 인기는 고공행진이다. 롯데홈쇼핑이 지난 5월 22일 롯데호텔과 협업해 ‘L7 숙박권’을 판매한 결과 한 시간도 채 안되어 매진됐고, GS샵의 ‘금호리조트 자유숙박권 패키지’도 큰 호응을 얻었다.
펜션과 캠핑장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G마켓이 올 상반기 여행 상품 판매량 분석에 따르면, 상반기 펜션·캠핑 판매량은 작년 대비 53%가 증가해 전체 여행 상품 중 가장 큰 신장세를 보였고, 최근 한 달 동안 국내 펜션·캠핑장 이용객은 36% 올랐다.
국내 여행지를 찾는 패턴도 변화했다. 한국관광공사가 SKT의 T맵 교통데이터 및 KT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조사에 따르면 하남시, 남양주시, 옹진군 등 수도권·대도시 주변 ‘근거리’ 관광수요는 전년보다 각각 17%, 9%, 6% 늘었다. 혹시 모르는 감염을 우려하며 장거리 이동보다는 집근처 친숙한 생활 관광지에서 가족과 함께 소규모로 여가를 즐기는 ‘생활관광’ 중심으로 트렌드가 변했다.
올여름은 집캉스
하지만 올여름에는 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여름에는 어디에 가지 않고 집캉스를 할 계획을 세운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누리꾼은 본인의 SNS를 통해 “여름휴가를 해외로 가던 사람들이 국내로 몰리니까 어디로 가든 다 북적거릴 것 같다”며 “이번 휴가는 돈도 아낄 겸 집에서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여행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종종 주말에는 캠핑을 다녔는데, 요즘에는 도심의 번화가보다 캠핑장이 더 붐빈다”며 “올 여름에는 집에서 캠핑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집캉스족이 늘어나며 집에서 간단하게 쓸수 있는 물건들이 각광받고 있다.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밀키트 제품은 전골이나 볶음, 쌀국수 등 까지 다양하게 출시되었다. 손질한 식재료와 양념이 함께 동봉되어 있고 요리법도 적혀있어서,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마트를 비롯해서 온라인 신선몰 등 구입하는 것조차도 간단하다.
거실에서 캠핑을 즐기기 위한 도구들도 인기다. 인디언 텐트 모양인 티피텐트와 조명만 있으면 캠핑 분위기가 물씬 난다. 집안 분위기를 발리같은 휴양지로 바꿔보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행을 갈 수 없다면 집에서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는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여름을 즐기는 ‘집캉스족’은 코로나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여름휴가 풍경이 됐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최소화 하면서 마음 편하게 휴가를 즐기려는 움직임을 스테이케이션이라고도 부른다. 머물다의 ‘stay’와 휴가의 ‘vacation’이 합쳐진 신조어다. 해수욕장 대신 전용 수영장이 있는 펜션을 찾고, 차에서 머무르며 캠핑과 숙박을 즐기는 ‘차박’ 등이 모두 그렇다. 코로나19는 여전하지만 휴식은 휴식이다. 무더운 한여름 저마다의 방법으로 쉼표를 찍는 것이 필요한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