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기파랑의 모습과도 같은 수풀이여.
일오 냇가 자갈 벌에서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끝을 따르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35대 경덕왕 때 승려 충담사(忠談師)가 냇가에서 화랑 기파랑의 재(齋)를 올리면서 지은 10구체 향가(鄕歌)이다.
천년을 지켜온 고목들이 즐비한 숲
반월성 바로 지척에 있는 숲은 그렇게 넓지 않은 작은 숲이다. 면적이 7,300m에 불과하다. 신라의 궁궐터인 월성지구에 있는 작은 숲, 계림은 사적 제19호로 보존 관리 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시림(始林) 또는 구림(鳩林)이라고 불려 왔는데 경주에 방문한 관광객이면 누구나 한번은 첨성대를 거쳐 반월성으로 이어지는 계림을 둘러본다. 입장료가 없기 때문에 지나는 길에 누구나 부담 없이 들릴 수 있는 곳이다.
숲은 오래된 고목들로 인해 역사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숲에 들어서면 숲속의 시원함과 함께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래된 나무들을 잘 보존하였다. 입구 쪽으로 들어가면 수령 1,300년 되는 회화나무가 있는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하여 아직 10% 정도 살아 있다. 그 외의 다른 고목들도 대부분 수백 년이 넘는 나이를 자랑이나 하듯이 서 있다.
팽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 울창한 고목(古木)들이 숲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고목들의 모습 속에 신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어 있는 것 같다. 오래된 고목들을 보는 재미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숲속에 탐방로가 만들어져 그 길을 따라가면 계림을 다 둘러볼 수 있다. 탐방로 한쪽으로 숲을 가로지르는 수로가 있는데 물이 제법 많이 흘러 그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신라의 노래가 있는 향가비(鄕歌碑)
숲의 남쪽으로 걷다가 보면 비(碑)가 하나 있는데 바로 향가비(鄕歌碑)이다. 향가(鄕歌)는 신라 때에 불리던 민간 노래로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문장 전체를 적은 향찰(鄕札)로 기록되었다. 보통 신라 때부터 고려 초기까지 향가가 유행하였다. 승려, 화랑을 포함한 다양한 작자들에 의해 불교의 기원이나 정치적 이념, 민요 또는 주술적 성격의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 향가비에 새겨져 있는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는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승려 충담사(忠談師)가 일오냇가에서 화랑 기파랑의 재(齋)를 올리면서 노래한 향가(鄕歌)이다. 충(忠)과 효(孝)를 중시하고 통일에 큰 힘이 된 화랑들의 정신을 기리고 본받고자 하는 경주 사람들의 노력이 아닌가 싶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5년(탈해 이사금 9)의 어느 날, 탈해 이사금이 밤중에 금성 서쪽에 있는 시림(始林)이라는 숲을 거닐던 도중 닭 울음소리를 어렴풋이 듣는다. 그는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 보게 하였다. 호공은 나뭇가지에 금빛의 작은 상자가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보고했다. 탈해 이사금이 직접 그곳으로 가 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는 외모가 아름다운 아이가 있었다. 탈해 이사금은 시림(始林)의 이름을 닭 계(鷄)자를 빌려 계림(鷄林)이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다. 아이의 성은 금빛 상자에서 나왔으니 김(金), 이름은 알지(閼智)로 정했다. 그 후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김알지를 태자로 삼았다. 경주 김씨(慶州 金氏)의 시작이다.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있는 비각(碑閣)
계림은 김알지 탄생 설화가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숲속에 토담으로 만들어진 비각이 있다. 조선 순조3년에 세운 계림비각(鷄林碑閣)이 있다. 오래된 담장과 낡은 기와가 좀 아슬아슬해 보이는 작은 비각이다. 옛날부터 많은 화가가 이 비각을 대상으로 그린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 비각 안에는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새긴 ‘경주 김씨 알지 탄생 기록비’가 보존되어 있다.
계림 주변에 많은 고분이 있다
계림을 벗어나면 지척에 내물왕릉이 있다. 계림과의 경계선이 모호한 내물왕릉은 숲의 서쪽 끝쪽에 있다. 노송들이 둘러싸고 있는 왕릉의 무덤 아랫부분에는 둘레돌이 띄엄띄엄 놓여 있다. 이 무덤은 규모가 작고 둘레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경주의 고분들은 평지에 터를 잡고 있다. 황오동, 황남동, 인왕동, 노서동으로 펼쳐지는 평야에 고분들이 모여 있다. 잔디를 입힌 고분들 사이로 뿌리를 내린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다.
경주에 사는 사람들은 고대 신라 시대의 왕릉 규모의 능을 항상 가깝게 하고 살고 있다. 고대 왕릉을 바라보고 사는 그 느낌은 우아하고 장엄한 느낌이다. 시야를 멀리 두고 보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옛 고분을 둘러보니 고분 주위 조경 관리가 정말 잘 되어 있다. 요즘처럼 체계적으로 사적지 관리를 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글·사진 박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