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토건대국, 지역균형발전 가져올까?

토건대국, 지역균형발전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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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정부는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23개 지역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남부내륙철도, 새만금 국제공항, 충북선 고속화 등의 굵직한 토목사업에 무려 24조 가량의 재원이 투입되는, 그야말로 각 지역마다 골고루 주어진 달콤한 선물이다. 대규모 토건 공사를 지자체들은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다. 인프라가 좋아지면 기업을 유치하기 편리해지고,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 지역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라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토건 공사만이 그런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는 걸까?

예비타당성조사란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해 우선순위와 적정 투자시기, 재원 조달방법 등 타당성을 검증해, 대규모 사업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지 미리 평가하는 제도다. 예타를 건너뛸 수 있는 몇 가지 예외 조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지역 균형발전이다.

지역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수도권과의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역의 자립적인 성장 발판 마련을 위한 국가의 전략적인 투자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해보자는 취지는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올해 1월 예타 면제가 된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 공사로, 완공되면 서울에서 거제까지 이동시간이 2시간이 줄어들며, 총 4조7천억 원이 투입된다. 청주~제천 구간 철도를 개량해 고속화 하는 사업에도 1조5천억 원이 투입되며 세종과 청주사이 놓이는 고속도로에는 8천억 원이, 남양주와 춘천사이의 제2경춘국도는 9천억 원이 소요되어 뚫릴 예정이다.

면제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은 대부분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이른바 토건 사업이다. 도로·철토 인프라 확충 사업 부문이 5조 7000억, 광역 교통·물류망 구축 사업이 10조 9000억, 생활 인프라 건설 사업이 총 4조 원 규모다.

R&D 투자 등을 위한 지역 전략사업(총 3조 6000억)만 유일하게 비(非)토건 사업이다. 총 24조 1000억 원 가운데, 20조 5000억 원의 토건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라는 규제 완화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총 24조 원의 예산 중 18조5천억 원은 국비로, 나머지는 지방비와 민간 투자금으로 댈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곳곳에서는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용인 경전철 등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사업 중에서도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재정에 부담을 주는 사업이 많다”며 “지역 민원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면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부진한 경제성적표를 만회하기 위해 고민 끝에 꺼내든 카드지만, “건설에 기댄 경기 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이번 정부의 원칙은 사실상 허물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건 경제를 ‘경기부양 카드’로 본격 활용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예타 면제가 4대강 사업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토건 경제에 의존해 경기를 부양한다는 근본 철학이 같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토건사업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켜주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교통 인프라가 좋아지면 지역 주민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는 있겠지만, 건설과 토목에 의존한 일시적 경기 부양을 제외하면 금액대비 효과는 미비한 수준이다. 토건이 고용효과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20조를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에 어떤 고용효과가 있었는지 묻는다면 일을 추친 했던 사람들도 자신 있게 대답하진 못할 것이다.

토건국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토건국가’라는 개념은 1960년대 이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몰락을 설명하는 데 사용됐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저축을 지방정부를 매개로 건설회사에 몰아주었고, 건설사들은 공사를 발주 받는 과정에서 정치인, 관료 등과 결탁 했다. 그 결탁의 일부를 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단기적이긴 하나 일자리를 창출해서 지역경기에 붐을 일으키는 것이다. 버블경제가 몰락한 1990년대 이후 이런 현상은 더 격심해졌다. 불황으로 없어진 일자리와 소득을 토건사업으로 대체한 것이다. 지방정부들은 민관합자 방식을 통해 1~2천억 엔 대의 거대한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미야자키현은 세계 최대의 테마파크로 조성하겠다고 나섰지만, 2천7백억 엔의 채무만 남기고 중단됐다. 1990년대에 일본 지방정부들의 채무는 70조 엔에서 187조 엔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일본정부는 1998년에 발표한 ‘국토 그랜드 디자인’에서도 초대형 토건사업들을 계획했다. 우리나라 ‘4대강 사업’을 연상케 하는 ‘슈퍼 제방’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토건사업에서 진 빚으로 인해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의 150%를 훌쩍 뛰어넘게 되었다.

국가의 재정이 파탄 날 지경에 이르자 일본도 공공사업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토건사업 의존증은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토건업체는 최소한의 수주를 확보하기 위해 담합과 정치인 매수에 사활을 걸고, 지방정부는 수주축소→고용축소→내수위축의 악순환에 빠졌다. 결국 이런 현상들은 중앙과 지방의 경제성장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70년대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는 “공업재배치와 교통·정보통신망의 형성을 통해 인구와 산업의 지방 분산을 꾀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토균형개발’은 정치지도자들이 외치는 슬로건이 됐고, 토건산업은 그들의 도구였다.

하지만 그 결과 전국의 땅값만 올랐을 뿐,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됐다. 지방에 남아있는 것은 교통시설·공공시설·관광시설 등 ‘시설’ 뿐이다. 사실상 껍데기뿐이다.

사실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다. 어디든 있는 똑같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그 지역 특유의 개성을 살린 경제와 문화만이 살길이다.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먼저다. 삽으로 흙을 퍼나르기 이전에 땅 위에 사는 사람의 삶을 생각해야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