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운전자는 증가세, 재범률도 높아
제2의 윤창호 씨 나오지 않도록 ‘윤창호법’ 제정 중
지난 10월 10일, 22살 청년 윤창호 씨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뇌사 판정을 받은 지 보름 만이었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 휴가를 받아 고향을 찾은 군 복무 중이던 청년으로, 사고 당시 그는 친구를 만나 편의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귀가하던 중 길을 건너기 위해 인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고 그대로 인도로 돌진해 그와 그의 친구를 덮쳤다. 운전자 박 모 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34%.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은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 그 결과 음주운전 단속 적발건수는 2013년 26만9,836건에서 2017년 20만5,187건으로 5년 사이 24%나 감소했다. 하지만 면허취소 수준의 만취운전자 적발건수는 51%에서 56%로 되레 늘었다.
만취운전자는 도로 위의 폭탄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는 19,517건. 부상자는 33,364명, 사망자는 439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1.2명이 사망하고 91.4명이 다치는 것이다. 윤창호 씨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만취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윤창호 법’이라 불리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들이 여러 건 제출돼 있고 여야 각 당은 정기국회 내에 이를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제출된 개정안들은 음주운전으로 규정되는 혈중알코올농도를 낮추거나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인해 상해나 사망의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1을 개정해야 실효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현행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11을 보면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상해·사망 사고를 낸 사람을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식적으로 혈중알코올농도의 법정 최저기준치를 초과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운전자가 음주의 영향으로 실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고, 실무상 현행 「도로교통법」이 음주운전으로 정한 혈중알코올농도 0.05%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의 만취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한 사람만을 위 규정을 통해 가중처벌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을 개정해서 낮은 혈중알코올농도부터 음주운전이라 정하더라도 실제로 상해·사망사고를 낸 사람을 가중 처벌하려면 반드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
“사회생활 하려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술자리는 일의 연장이다”와 같이 우리나라는 지나칠 정도로 술에 관대하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이상 성인의 월간 음주율(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은 62.1%로 2005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았다. 1회 평균 음주량이 5잔 이상이고 주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율도 전년도보다 0.4% 증가한 14.2%였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은 술자리에서 음주를 강요당했다고 응답할 정도로 술을 권하는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대학생과 직장인 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의하면 ‘음주를 강요받은 경험’은 대학시절에 70%, 직장생활 중에는 73%에 달했다. 상사와 교수, 선배 등 윗사람의 강권으로 억지로 술을 마신 경우는 39.8%나 됐고, 참여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마신 경우는 30.4%로 집계됐다.
사회적으로 음주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음주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1월 13일 발표한 ‘음주폐해예방 실행계획’에 따르면, 주류광고 시 ‘술을 마시는 행위’ 표현을 금지하고, 미성년자 등급 매체물 방송 전후의 주류광고 금지, 광고노래 금지를 TV․라디오의 방송매체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광고매체에도 적용한다.
아침 7시부터 22시까지인 주류광고 금지 시간대를 DMB․데이터 방송, IPTV에도 적용하고, 과음 경고 문구를 주류 용기 외에도 주류광고 자체에 직접 표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담배광고 금지기준과 같이 주류회사 행사 후원의 경우 제품 광고를 금하고 후원자 명칭만 사용하며, 현행 지하도, 공항, 항만, 자동차, 선박 등의 교통시설이나 수단에도 주류광고 금지를 추진키로 했다. 광고가 음주를 유도하고 미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청사와 의료기관, 도서관과 같이 공공성이 높거나,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장소(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청소년활동시설 등)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해 음주행위와 주류 판매를 금한다. 다만 초․중․고 운동장에서의 마을행사와 같이 공공장소 관리자가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음주를 허용할 방침이다. 또한 도시공원 등의 공공장소는 지방자치단체별 특성에 따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자체 조례를 통해 지정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부산시는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고 음주운전을 뿌리 뽑기 위해 현재 3곳에서 운영 중인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인구 20만 명 이상 지역 7곳으로 확대한다. 또 음주폭력 등으로 보호처분 정을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 개별상담과 집단 재활프로그램 등을 강화해 재발 방지 효과를 높이기로 했다.
제주도는 어린이보호구역 324개소, 도시공원 92개소, 탐라광장 등 다중 이용 장소 8개소 등 모두 846개소를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음주 청정지역이란 음주로 초래될 수 있는 소란과 무질서 등 부정적인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음주 행위 제한을 계도하기 위해 지정·관리하는 지역이다.
울산시와 전북도는 공무원 음주운전에 대한 징계수위를 강화·확대했다. 대전시도 음주 운전 징계규칙 12개 항목 기준을 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음주운전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만취한 상태에서 스마트폰으로 카셰어링 앱으로 차량을 빌려 친구들을 태우고 질주해 차에 타고 있던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또한 면허정지 수준인 만취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만행도 일어나고 있다. 일각의 주장처럼 운전자가 음주상태일 경우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기술적인 예방조치도 필요한 지경이다.
우리나라는 어디서나 술을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어디서든 마실 수 있다. 밤늦게까지 술을 판매하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어 특히 음주운전에 취약하다. 더 이상 무모한 음주운전으로 인해 안타깝게 생명을 잃을 수는 없다. 음주운전은 질병이라는 생각으로, 음주 사고의 뿌리를 뽑아야 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