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가족공원 부지에 설립하려던 국립한국문학관의 건립이 물거품이 됐다. 2년이 넘는 기간 공모와 경쟁,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노력해왔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제2의 대안을 찾을 때까지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을 원하던 지자체에서 건립을 자청했으나 이 역시 성사되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에서 눈독을 들이는 문학관 설립은 마냥 좋은 일일까? 오히려 문학계와 문학을 소비하는 시민들은 다소 냉정한 분위기다. 지역 곳곳에 자리한 문학관마다 콘텐츠가 부실하고 독창성 없는 프로그램 전시 운영이 주요 원인이다. 반면 잘 만든 문학관은 관광명소로 성공을 거둬 지역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역할도 한다. 문학관 유치를 향한 뜨거움, 반대로 냉정한 반응이 공존하는 ‘문학관’ 설립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무산, 제2의 대안 있을까?
2016년부터 추진되던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이 무산됐다. 문학진흥법 제정으로 설립 근거를 마련하고 건립부지 공모에 24개 지자체가 신청할 초기만 해도 문학관 설립에 난항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자체간 문학관 유치경쟁이 과열돼 공모가 중단됐다. 문학보다는 지자체 간 배수진을 친 자존심 경쟁으로 왜곡된다는 지적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당초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이후 문체부는 문학관 부지로 용산 가족공원 부지를 최적 후보지로 꼽았다. 하지만 건축 허가권을 가진 서울시에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용산 가족공원은 용산 주한미군기지 부지의 전체 공원화를 전제로 반환받은 곳이기 때문에 문학관을 설립하면 생태문화공원을 짓겠다는 본래 계획에 어긋난다. 또 하나의 기관설립을 허가하면 다른 곳에서도 시설 건립 요청이 몰릴 것이 우려되는 점도 서울시의 입장이다.
이에 문체부는 국립한국문학관 설립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문학관 사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문학 5단체장 등 문학계 인사와 건축, 도시설계, 시민운동가 등의 각계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문학관 설립이 사업 계획 단계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자 여러 지자체에서 국립한국문학관 설립 유치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애초에 지자체간 과열 경쟁으로 공모를 중단한 문체부가 문학관 유치에 애쓰는 지자체의 손을 쉽게 잡을 수 없는 이유다.
지자체만 활기, 문학계 반응은 냉담
여러 지자체에서 문학관 설립에 사활을 거는 데 비해 문학계에서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2016년 문학진흥법이 시행되면서 문학관은 학예사, 프로그램 운영 등 제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체부는 전문인력 배치를 위한 인건비와 프로그램 설계, 운영을 위한 지원을 2021년까지 약 50곳의 문학관에 20억 원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지자체의 경우 관광 상품으로써 문학관을 설립·개발할 수 있고,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유치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학계에서는 너도나도 경쟁하듯 설립하는 문학관을 반기지 않는다. 유명작가의 이름을 걸고 문학관을 짓기만 할뿐 부실한 자료와 콘텐츠, 장기 운영 계획의 부재 등이 그 이유다. 지자체가 공약사업과 예산 유치를 위해 보여주기식 문학관을 만든 후 볼만한 자료도 없이 방치한 사례들이 이미 많기 때문이다. 문학과 관계없는 기념품 판매가 이뤄지는 것도 상업적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문학관 중 다수는 방문하면 텅 빈 공간에 관람객은 구경하기 힘들다. 기념할 만한 자료를 전시하고 영상을 틀어놓는 정도의 프로그램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방문할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문학관의 다수가 대중교통이 불편한 산지나 주택가에 위치한 것을 감안하면, 부실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문학관이 방치되는 데 힘을 보태는 격이다.
관리 미숙도 문제다. 경남문학관은 올여름 장마철이 되자 비가 샜다. 전국 문예지의 창간호 등 장서를 보유한 경남문학관은 비가 샌 게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귀한 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문학관을 만들었으면서 정작 유지보수에 미숙한 것은 모순이다.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이외수문학관은 운영이 잘 되는 편이었으나, 최근 집필실 사용료 논란으로 이외수 작가와 화천군 측이 법정다툼을 하게 됐다. 이 사례는 문학관을 두고 지자체와 문학계의 시각차가 얼마나 판이한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학관 설립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물론 운영이 잘 되는 문학관도 있다. 전남 보성의 태백산맥문학관은 올해 초 전라남도의 안전관리 우수시설 인증을 받았다. 태백산맥문학관은 2008년 개관 이후 관람객 62만여 명이 다녀간 곳으로, <태백산맥>의 애독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고 있다.
시인 김수영이 생전에 시작 생활을 했던 서울 도봉구에는 김수영문학관이 있다. 주변에 위치한 김수영 시인의 본가와 묘, 시비, 현대사인물길 등은 문학관과 함께 둘러볼 만한 관광지다. 김수영문학관에서는 시와 평론, 산문, 일상유물을 상시 전시하고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김수영 시 낭송대회, 김수영 청소년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등 활발한 대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순하고 지루하게 볼거리만 전시하는 대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고 문학정신을 계승하는 데 힘쓰는 문학관 운영방식이다.
결국 문학관이 설립 후 방치된 유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작가와 문학이 박제된 과거로써 문학관에 있는 게 아니라 현 시대의 독자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각 지자체는 관광명소를 만들 듯 문학관 설립에만 열을 올리고, 막상 설립 후에는 방치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문학관의 소재인 작가와 문학관에 찾아오는 관람객 모두 ‘사람’이다. 사람을 주제로 만든 문학관에 사람들이 찾아와 생명을 불어넣는다. 지자체와 문학관은 항시 관람객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