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 달 살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한 달 살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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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청년들이 사표를 던지고 있다. 몸과 마음이 방전돼 나만의 휴식처, 재충전이 필요한 현대인들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케렌시아’를 찾아 떠난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내 시간은 가지지 못한 채, 모든 순간을 정신없이 흘려보내는 일이 많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국내외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한 달 살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를 비축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 한 달 살기를 통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대로의 나로 살기로 했다

우리는 SNS를 통해 우리의 사생활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보기도 한다. SNS에 올라오는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낮춘다. 실제로 우리는 어딘가를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SNS를 통해 본 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타일이나 식당, 여행지 등 자신에게 보여 지는 정보가 많은 만큼 현대인들은 지금의 삶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아가고 있다. 그만큼 사는 게 많이 피로하다.

최근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여행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기 위해 떠나고 있다. 케렌시아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용어로 카페, 퇴근길 버스의 맨 뒷자리, 해외여행, 음악회, 공연장 등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 혼밥, 혼술을 너머 혼행(혼자하는 여행), 혼자서 한 달 살기는 파트너를 신경 쓰지 않고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케렌시아가 된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를 모르는 타지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한 2030세대가 많아지고 있다.

작년 12월 이은아(25)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돌입했다. 그녀는 먼저 검색창에 ‘한 달 살기’를 쳤다. 연관 검색어에 국내 제주도뿐 아니라 태국 방콕, 필리핀 세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까지 전 세계 도시들이 줄줄이 떴다. 고민 끝에 가장 빨리 떠날 수 있는 제주도로 골랐다.

“첫 직장에서 모든 것이 어색하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하루는 문득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회사를 위해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제주도로 떠난 이유를 말했다.

2박3일 짧은 일정으로 떠났던 제주도여행은 한 달 살기에 들어가면서 한껏 여유로워졌다. 관광객이 아닌 제주 현지인처럼, 관광지가 아닌 그 마을을 둘러보며 하루를 보냈다. 애월읍에서 한 달을 보낸 그녀는 블로그나 SNS에 올라오지 않은 맛집과 예쁜 카페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좋아했다.

제주도에 한 달을 보내면서 좋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 병원을 혼자 가야 했던 것부터 부모님께서 언제 돌아오냐는 문자와 친구들의 전화로 인해 지금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길 것만 같았던 한 달은 쏜살같이 흘러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날. 이은아 씨는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됐고, 그냥 흘려보내는 삶이 아닌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한 달 살기는 그녀를 한 뼘 더 성장시켰다.

 

마음 가는 대로

우리는 실패한 일보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더 크게 후회를 하곤 한다. 늘 꿈 앞에 ‘언젠가 ~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지만 이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직장인 김영오(29) 씨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스페인에서 한 달 살기를 꿈꿨다고 한다. 꿈같은 일은 현실이 됐다. 안정된 일상을 내려놓고 한 달간 그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하기로 했다. 지켜야 할 계획도 없고 누군가와 타협할 일도 없는 완벽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한 달간의 여행을 위한 준비물이라곤 옷 몇 벌이 담긴 작은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다른 준비물은 필요 없었다. 가겠다는 의지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비행기 티켓팅 외에는 따로 계획은 짜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계획대로 움직였는데 스페인에 가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 그날 가보고 싶은 곳을 갔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까 그곳의 풍경과 문화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짧은 여행이든 긴 여행이든 내가 행복하려고 가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지에서 무엇을 꼭 봐야 할 필요는 없다. 꼭 먹어야 할 필요도 없다.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한 달 살기가 부담스럽고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면 가까운 나만의 장소를 만들어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당신이 지금 편하다고 느끼는 그곳이 SNS에 나오는 그 어떤 여행지보다 아름다운 곳이 될 거라 생각한다.

황정윤 기자 hj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