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이 완화되고, 올림픽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기류를 타고 유커(중국인 관광객)가 다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중국인 입국자의 회복세가 눈에 띄었으며, 유커들이 사랑하는 지역인 명동, 홍대를 비롯해 면세점까지 관광객이 늘며 실적이 점차 개선되는 분위기다. 정부도 오랜만에 찾아온 유커들을 반가웠는지 문체부에서 방한 중국인 유치정책의 질적 성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커의 귀환이 모두에게 반갑지만은 않다. 유커들이 빠져나간 제주도는 지난해부터 내국인 관광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유커에 대한 보답으로 붙여진 제주시 연동 신세수 ‘바오젠거리’의 명칭도 ‘누웨 모루 거리’로 바뀌었다. 제주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중국인 범죄소식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관광업계의 ‘대목’ 손님이었던 유커를 손꼽아 기다렸거나 혹은 기피하는 업계 현황을 살펴봤다.
사드 여파의 해빙기… 유커가 돌아왔다
사드 여파로 내려진 중국의 한국 단체 관광 금지령이 해소되는 분위기다. 사드 여파로 인해 주요 고객이 내국인이 아닌 중국인 단체 관광객 중심이었던 명동의 경우 한동안 빈 상가들이 우후죽순 늘어날 정도로 지독한 불황을 맞았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버스로 항상 붐비던 홍대 거리도 작년에는 한산했는데, 최근 들어 단체 관광버스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랬던 명동과 홍대 일대에 사드 보복 철회 소식이 들리자 중국어가 곧잘 들리기 시작했다. 예전만큼 단체 관광객이 대거 몰려온 정도는 아니지만, 해빙기를 맞았으니 상인들은 다시 매출 회복세를 맞이할 거라 기대하고 있다.
유커가 즐겨 찾는 제주에도 귀환 소식이 있다. 5월부터 9월 사이 중국의 골프 멤버십 기업인 퍼시픽링스에서 골프 관광객 3천여 명을 유치한다고 밝혔다. 퍼시픽링스는 가족까지 포함하면 5~6천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인 입국자에 신난 정부
유커가 늘어나 관련 업계가 살아날 거란 조짐뿐 아니라 실제로 중국인 입국자의 회복세는 수치로 확인됐다. 지난 3월 법무부가 발표한 중국인 입국자는 427,618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 증가했다. 3월이 의미 있는 이유는 사드 여파 이후 최초로 월간 입국자가 40만 명이 넘었다는 점이다.
중국인 입국자가 늘어나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 5월 15일 방한 중국인을 유지하기 위해 단체관광의 질적 성장에 힘쓰겠다고 나섰다. 문체부는 중국 현지 온·오프라인 여행사 및 여행포털 등과 협력해 신규 방한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중국의 주요 거점 지역에서 한국관광 종합설명회와 소비자 행사 등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 여행사의 방한관광 정보 갱신을 적극 지원하고, 중국 개별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이벤트 개최, 단체비자 수수료 면제 기한 연장, 우수 중국단체관광 전담여행사를 신규 지정하는 등 한동안 정체됐던 중국인의 방한 관광 수요를 늘리는 데 집중한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유커를 향한 특혜가 가득하다.
모두가 반길 수 없는 유커, 그 속사정은?
일부 관광지 상인들과 정부가 유커의 귀환에 호감을 표하는 반면 심드렁한 이들도 있다. 제주시 연동 ‘바오젠거리’는 ‘제주의 작은 중국’이었다. 중국 바오젠그룹이 1만 4천여 명의 관광단을 보낸 데 보답하고자 지은 이름인 ‘바오젠거리’는 이제 ‘누웨 모루 거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드 보복 조치가 길어지면서 이곳에 폐업하거나 업종을 바꾸는 매장이 속출하는 등 상인들의 민심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즐비했던 중국어 간판도 하나둘 사라졌고, 호객을 하는 중국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름까지 바꾼 것을 보면 누웨 모루 거리의 상인들은 이제 중국인 관광객이 돌아온다 해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웨 모루 거리에 중국인 대상의 상가가 많다 보니 소수지만 관광을 오거나 장기체류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들 중에는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흡연이나 고성방가를 일삼는 중국인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다 최근 제주도 내에 야간에 흉기를 이용한 외국인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불법체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까지 더해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4월 27일 누웨 모루 거리를 포함한 4개 구역을 ‘외국인범죄 집중순찰구역’으로 선정해 야간순찰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형사팀을 전진 배치시켰다. 이 같은 조치로 안전은 강화되겠지만, 주민들이 중국인 관광객을 반길 수 없는 까닭이다.
제주 외 다른 지역은 어떨까? 명동, 홍대 등 지역 상인들은 관광객이 줄어 매출이 감소했을 때는 별다른 조치나 배려를 받지 못했으나 다시 관광객이 늘어날 경우 임대료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매출이 감소한다 해서 건물주가 임차인의 임대료를 할인해주는 사례는 없지만, 늘어날 경우에는 임대료 상승에 대한 압박이 공공연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의존’이 문제
유커의 방문이 언제나 증가추세를 보일 수만은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국가 간 이슈가 있을 시 관광객은 감소하고, 해소되면 다시 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관련 업계가 힘들었던 이유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해 발생하는 매출에 의존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JTBC에서 방영하는 ‘효리네 민박’ 등의 예능 프로그램이 시즌을 이어가며 방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제주를 다시 찾는 내국인이 늘었다. 퇴사, 휴직 후 제주에서 살며 제2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여러 책으로 출판되며 제주에 장기간 여행하는 내국인들도 많아졌다. 내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적인 포인트를 살린 제주만의 굿즈도 여행욕구를 상승시키는 데 충분했다.
이처럼 관련 업계가 노력하면 국가 간 이슈나 특정 국가로부터 오는 관광객에 의존하지 않고도 꾸준한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의존도를 낮추고 강점을 살리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면 관련 업계는 ‘한때장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안상미 기자 asm@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