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병열 에세이 I 새해는 새것부터 써야겠다

전병열 에세이 I 새해는 새것부터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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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성시(惜吝成屎)라는 말이 있다.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는 의미다. 지나치게 아끼다 보면 결국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유품정리사들의 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좋은 것은 아끼다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언론학박사 전병열 편집인 / 수필가

또다시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가 되면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가 되고자 목표를 세우고 실천 계획을 짠다. 지난해의 성과를 분석하며 성공과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새해를 설계한다. 그러나 새해를 맞이하는 그때뿐, 현실에 부딪히면 새해 소망은 그저 잠재의식 속에 머물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의 꿈은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솟구친다. 새로운 각오로 의지를 다지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한다. 한창때는 새해 비전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실감하면서 꿈마저 빛이 바래는 것을 느낀다. 어제는 역사로 기억되지만, 내일은 불확실한 미래일 뿐, 오늘만은 꿈이 현실로 나타난다. 오늘 행복하면 어제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해진다.

사람은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참고 견딘다. 그러나 오늘의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내일을 믿고 오늘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은 내일을 위한 희생일 뿐이다. 내일이 없다고 각오하고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에 생각하자. 미리 내일까지 염려하지 말고 기대도 하지 말자.

“새 양복 입으세요. 왜 헌 옷을 입어요? 아껴서 언제 입을 건데요?” 외출을 준비하며 아내의 핀잔을 듣고 머쓱해졌다. 유행이 지난 양복이지만, 평소 외출복으로 즐겨 입는 옷이다.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로 수제 양복 장인을 소개한 계기로 고급 양복을 맞춰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새 양복을 입어야 하는 데 새것을 아끼는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 아내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실천을 못 하고 있다. 오늘만 생각하고자 했는데 자꾸만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내일 할 것은 내일 생각하면 될 텐데, 왜 내일을 걱정하는 걸까. 내일을 위해 아끼지 말자는 것이다. 꿈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고 생각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새것이 헌것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절약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새것을 아낀다. 물론 명절이나 중요한 행사에 새 옷을 입고자 아끼는 것이다. 요즘 세대로서는 이해가 어렵겠지만, 양복을 자주 맞춰 입지 못하는 세대들에게는 새것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다. 비단 양복뿐만이 아니라 새것을 아끼고 헌것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관행이다. 그래서 올해부터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새것부터 쓰고 헌것은 새것이 없을 때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처럼 물자가 풍부한 시대를 살았다면 습관도 달라졌을 것이다. 자린고비(玼吝考妣)라는 말을 전설로 아는 세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시대는 그렇게 살았다.

석인성시(惜吝成屎)라는 말이 있다. ‘아끼고 아끼다 똥 된다’는 의미다. 지나치게 아끼다 보면 결국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유품정리사들의 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좋은 것은 아끼다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새것이 유품으로 처분된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유족들이 부모의 옷장을 정리하다 보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나 자녀들이 선물로 사준 물품들이 그대로 있다고 한탄한다.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고이 모셔 놓은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새해에 다짐하는 이유다. 나 역시 새것을 아끼고자 하는 의식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보통 때는 굳이 헌옷을 습관적으로 꺼내 입는다. 버리기가 아까워서이지만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새해부터는 장롱에 있는 새 옷과 신발장에 잘 보관된 새 구두를 꺼내 신어야겠다. 오늘이 중요하지, 내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미래는 로봇이 일하고 인간은 즐기기만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기계가 돈 벌어 주고 인간은 먹고 쓰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되면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불안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봇이 인간 대신 일을 하는데 염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올해부터는 오늘을 즐기고 행복하도록 해야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