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4대강 문건, 국정원 내부 결재도 안 끝나”
박 시장 “사법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
검찰 “판결문 검토한 뒤 항소 여부 결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형준 부산시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로써 박 시장은 시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확진으로 재택 치료 중인 박 시장은 대리인을 통해 “사법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이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박 시장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이라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 측 증인들의 증언 역시 직접증거는 물론 간접증거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여러 단계에 걸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재전문진술’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당시 국정원이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부적절하다고 볼 여지는 있으나, ‘불법사찰’은 그 의미나 발언이 행해진 시점 등에 비춰 증명이 어려운 가치판단에 속한다”며 “피고인은 선거 과정에서 상대방 후보자의 의혹 제기에 대해 해명하는 차원에서 발언을 한 것인데, 이는 불법사찰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을 밝힌 것이지 허위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검찰이 제시한 ‘4대강 사업 관련 주요 인물 사찰’ 문건의 증거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문건을 요청하고 보고받았다는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데, 해당 문건은 국정원 내부 서버에서 보고 과정상 생성된 것으로 국정원 내부 결재도 끝나지 않았다”며 “국정원이 배포처나 요청한 곳을 청와대 홍보기획관이라고 기재했더라도 내부적으로 작성됐을 뿐이지 실제 청와대로 전달된 원본이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 측 증인들의 증언 역시 직접증거는 물론 간접증거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여러 단계에 걸쳐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재전문진술’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지난해 4월 보궐선거 당시 제기된 ‘4대강 국정원 민간인 사찰 지시 의혹’에 대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모두 12차례에 걸쳐 “지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달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은 청와대 근무시절 민간인을 사찰한 적이 있으면서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선거 기간 반복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유권자에게 잘못된 내용을 알려 공명 선거를 훼손했다”며 박 시장에게 벌금 500만 원을 구형했다.
박 시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시민단체들이 사법부를 규탄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부산환경회의, 내놔라내파일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는 19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무죄 선고는 사법부가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박 시장이 청와대 재직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건에는 홍보기획관, 정무수석이 명확히 기재돼 있어 박 시장이 4대강 사찰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면서 “그럼에도 박 시장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전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국가권력이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한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지만, 엄중히 법을 집행해야 할 사법부는 피고인의 비호에 안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사법부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이번 판결로 과거 민간인 사찰에 관여했던 정치인과 국정원 관련자들의 죄의식은 옅어질 것이며 누군가는 더욱 권력을 남용할 방법에 골몰할 것”이라면서 “이번 선고가 남기는 영향은 박형준 개인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권력의 횡포를 제대로 처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명이 기자 lmy@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