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병열 에세이 l 봄은 희망이다

전병열 에세이 l 봄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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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화려함만을 좇지 않으려 한다. 화려함에 가려진 낯선 곳도 보고 나름의 의미를 찾겠다는 것이다. 영원한 봄날은 없다.”

전병열 편집인 (정치학 박사 · 언론학 전공)

우리에게 드디어 봄이 왔다.

엄동설한의 한파를 이겨내고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누가 불러서도 아니요, 누가 밀어서도 아니다. 새 생명을 품고 스스로 우리 곁을 다가섰다. 봄은 남녘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자신의 향기를 뿜는다. 그래서 봄 냄새를 맡고 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계절마다 특성이 있지만, 생명과 희망을 주는 계절은 봄이라고 생각한다. 올봄은 유난히 우리의 기대를 모은다.

우리 집 정원에는 상사화가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메마른 대지를 뚫고 연녹색의 새싹이 움트고 2~3일이 지나면 짙푸른 잎으로 삭막한 정원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활기찬 생명력으로 봄을 재촉하고, 이어 목련이 터질 듯 꽃망울을 맺고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다. 동백나무 잎의 윤기가 봄볕에 반짝거리고 땅속의 뭇 생명이 기지개를 켠다. 목련이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며 자태를 드러낸다. 만개한 목련은 나비처럼 꽃잎을 날리며 우아하게 온 정원을 수놓고 꿀벌들이 꽃술에 내려 않는다. 봄이 활짝 열렸다. 뒤이어 진달래가 새빨갛게 피어 흐드러지게 정원을 장식한다. 잇따라 철쭉이 시샘하며 화려하게 꽃망울을 펼친다. 잡초와 함께 우거진 풀밭으로 상사화 잎은 사그라들었다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올곧게 상사화 꽃망울을 밀어 올려 아름답게 활짝 꽃잎을 펼친다. 화사하게 핀 상사화를 감상하며, 꽃말의 의미도 새삼 되새겨 본다. 목련이 봄바람에 날려 온 정원을 흰 눈으로 뒤덮는다. 그때쯤이면 온 천지가 녹색의 물결로 뒤덮이고 한여름의 싱그러움을 만끽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봄을 의식하며 살펴본 감상이다. 나는 봄을 제대로 품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봄나들이 한번 제대로 즐기지 못한 삶이었다. 일에 쫓겨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계절의 변화조차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도처에서 봄 축제가 유혹했지만, 온전히 봄을 느끼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직장에서 봄 야유회를 갈 때도 봄 향기보다는 인간관계와 비즈니스를 먼저 생각했다.

“일에 미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일로써 즐거움을 느끼고, 보람을 얻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행복은 일에서 찾는다.” 스스로 일 중독자라고 지칭한 어느 성공한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오직 일밖에 모른다고 할 정도로 일에 매달려 산다. 인생의 낙을 일에서 찾는단다. 물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고 삼매경에 빠질 수 있다. 일로 인해 얻는 성취감이 곧 그의 행복일 수 있다. 그는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된다며 푸념할 때도 있다. 같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그의 말대로 당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더 잘살기 위해서 일밖에 몰랐다. 가난을 물려줄 수 없다는 부모의 간절함이 담긴 일터가 곧 희망이었다. 봄을 체감할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없었다. 대부분 입지전적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라이프스토리다. 나 역시 일만 하고 살았다. 취미생활도 일과 관련된 데서 찾을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봄은 상징적인 희망일 뿐이었다.

이제 서서히 봄을 느끼고 사는 인생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인생의 봄날을 찾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봄의 화려함만을 좇지 않으려 한다. 화려함에 가려진 낯선 곳도 보고 나름의 의미를 찾겠다는 것이다. 영원한 봄날은 없다. 여름이 있고 가을, 겨울이 있다. 진정한 인생의 4계절을 느끼며 준비하려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면 봄날은 길어질 것이다.

꽃이 피고 생기를 뿜으며, 결실을 보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며 일생을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이제 서야 느끼는 것이다. 꽃만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것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도 봄이 오고 있다. 봄은 희망이기에 새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전병열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