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우리나라 청자 제작의 시원(始原)이라 일컬어지는 보물 제237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를 국보로 지정했다.
국보 제326호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銘 壺)」는 고려 태조(太祖)를 비롯한 선대 임금들의 제사를 위해 건립한 태묘(太廟)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왕실 제기(祭器)다. 굽 안쪽 바닥면에 돌아가며 ‘순화 4년 계사년 태묘 제1실 향기로서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다(淳化四年 癸巳 太廟第一室 享器 匠崔吉會 造)’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이를 통해 993년(고려 성종 12년) 태묘 제1실의 향기(享器, 제기)로 쓰기 위해 장인 최길회가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항아리는 문양이 없는 긴 형태로서 입구(口緣)가 넓고 곧게 서 있으며 몸체는 어깨 부분이 약간 넓은 유선형(流線形)이다. 표면에 미세한 거품이 있으나 비교적 치밀한 유백색의 점토를 사용해 바탕흙(태토, 胎土)의 품질이 좋다. 표면에는 은은한 광택과 함께 미세한 빙렬(氷裂)이 있고 군데군데 긁힌 사용 흔적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1989년~1990년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황해남도 배천군 원산리 2호 가마터에서 발굴한 「‘순화3년’명 고배(’淳化三年‘銘 高杯)」를 비롯해 여러 파편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 역시 원산리 가마터에서 제작돼 태묘의 제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돼 향후 북한 지역 청자 가마터와 비교연구 등을 통해 우리나라 청자 생산의 기원에 대해 더욱 명확하고 종합적인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는 현전하는 초기청자 가운데에서 드물게 크기가 큰 대형 항아리로 바탕흙(胎土)의 품질이 우수하고 형태가 비슷한 사례가 없는 유일한 작품으로써 주목된다. 그리고 굽 안쪽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연도, 기명의 용도와 사용처, 제작자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황해남도 원산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순화’명(‘淳化’銘) 파편들과 비교해 고려 왕실 제기 생산 가마터를 비롯해 다양한 제작여건이 추가로 밝혀짐으로써 초기청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편년자료로 가치와 위상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 청자 발달사를 밝히는데 필수적인 유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크다.
전세리 기자 jsr@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