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가을의 상징, 이제는 핑크? 핑크뮬리 전국적인 유행

가을의 상징, 이제는 핑크? 핑크뮬리 전국적인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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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는 너도나도 핑크빛으로 넘실댄다. ‘몽환적인 느낌’, ‘아련한 가을소녀’, ‘핑크빛 속에서 인생샷’ 등 핑크빛 억새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핑크빛 억새는 외래종 여러해살이풀인 ‘핑크뮬리’다.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핑크뮬리는 분홍색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외국 잡지의 화보에서나 보던 배경이 눈앞에 펼쳐져, 사진에 담으면 마치 모델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핑크뮬리는 여러해살이풀로 볏과 식물이다. 핑크뮬리의 우리 이름은 분홍쥐꼬리새로, ‘꽃 이삭이 쥐꼬리를 닮은 풀’이라는 뜻을 가졌다. 쥐꼬리새는 보라색, 흰색의 꽃이 피기도 하는데 분홍색 꽃이 가장 유명하다. 길고 가느다란 줄기에는 얇고 길며 뾰족한 잎이 나 있고 줄기 꼭대기에는 분홍빛의 작은 꽃이 원뿔 모양으로 무리 지어 핀다. 원산지는 미국 중서부로,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병충해 피해도 적으며 재배가 쉬운 편이라 정원식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핑크뮬리의 개화 시기는 9월부터 11월 초까지로 10월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억새보다 한 발 빠르다.

핑크뮬리를 핑크억새라고도 흔히 칭하지만, 억새와 핑크뮬리는 같은 볏과 식물일 뿐 다른 종이다. 특히 억새와 갈대는 길이 1~3m로 큰 반면 핑크뮬리는 보통 높이 60㎝ 정도로 자라며 아무리 크더라도 90㎝를 넘지 않는다. 또한 줄기도 훨씬 가늘고 부드러워서 비스듬히 서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

핑크뮬리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건 4년 전부터다. 제주 휴애리 자연생태공원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순천과 경주도 핑크뮬리의 성지로 떠올랐다. 갈대로 명성이 자자하던 순천만국가정원은 핑크뮬리를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경주는 보문단지 내 첨성대 옆에 자리한 핑크뮬리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더 붐볐다.

이처럼 핑크뮬리를 볼 수 있는 곳은 ‘핑크뮬리 성지’라는 이름으로 명소가 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핑크뮬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과 서초구 잠원 한강공원이다. 원래 억새로 유명한 하늘공원은 2,000㎡의 핑크뮬리를 추가로 식재했다. 여기에 총천연색의 분홍색을 이루는 ‘댑싸리’까지 만개하면서 이를 찍기 위해 몰려든 가족이나 연인들로 넘쳐난다. 서울 서초구 잠원 한강공원에 6,000㎡ 규모로 조성된 그라스 정원에서도 핑크뮬리를 만날 수 있다. 핑크뮬리 명소로 유명한 양주나리공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핑크뮬리와 함께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고 싶다면 경주가 제격이다. 첨성대가 있는 경북 경주 동부사적지 주위는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지난해 이곳의 핑크뮬리는 840㎡ 규모였는데 관광객 반응이 뜨겁자 올해는 그 면적을 5배로 늘렸다. 억새하면 빠질 수 없는 전남 순천만국가정원도 분홍빛이 찬란하다. 핑크뮬리에 분홍 코스모스까지 어우러져 아름다운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부산 낙동강 하구도 핑크뮬리가 한창이다. 겨울 철새들의 낙원 을숙도에서는 핑크뮬리 너머로 철새들이 날아오르는 환상적인 경관이 펼쳐진다. 을숙도보다 핑크뮬리가 더 많은 곳은 대저생태공원이다. 대저생태공원은 낙동강 대저수문부터 김해공항램프까지의 둔치지역으로 크고 작은 습지와 초지가 있어 여가와 휴식을 즐기기에 최적의 곳이다.

이밖에 팜파스(억새) 축제가 진행되는 충남 태안 청산수목원을 비롯해 강원 철원 고석정 코스모스십리길, 충북 봉방동 하방마을, 대전 한밭수목원 등이 핑크뮬리 명소로 유명하다.

핑크뮬리가 시작된 제주의 가을 역시 핑크빛 일색이다.

제주에서 핑크뮬리 명소는 오름부터 테마공원에, 일반 카페까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서귀포의 휴애리 자연생활공원과 노리매공원이다. 제주식 전통 가옥과 돌하르방, 돌담길에 피어난 핑크뮬리는 이국적인 풍경을 이뤄낸다. 결혼 스냅 사진 명소로도 인기다. 최근엔 한라산 분화구 모양의 핑크뮬리도 조성돼 가을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하지만 낮은 시민의식으로 애써 조성한 핑크뮬리밭이 몸살을 앓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식물을 밟는 건 다반사고, 핑크뮬리를 뽑아 셀카를 찍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부산 대저생태공원의 핑크뮬리는 몇몇 관광객들의 몰상식한 행동으로 1/5정도의 핑크뮬리가 훼손됐다. 상암동 하늘공원에서도 핑크뮬리 군락지에 울타리를 쳐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들어가는 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울산대공원은 훼손된 핑크뮬리 구역은 복구하지 않고 있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 자리에 ‘낮은 시민의식이 남긴 흔적… 부끄럽지 않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세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핑크뮬리 서식지는 인증샷 성지’라는 공식이 생겼고,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앞 다투며 지역 관광지에 핑크뮬리를 심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32곳에서 핑크뮬리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외래종인 핑크뮬리가 우리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핑크뮬리를 심은 지자체들은 “외국에서도 조경소재로 많이 쓰이고 위해성이 없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핑크뮬리는 생존력이 강해, 한 번 뿌리를 내린 곳에서 해마다 이삭을 틔우기 때문에, 다른 작물을 새로 심으려면 독한 제초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잡초처럼 다른 작물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인위적으로 들여온 외래종이 방치됐을 경우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의 한 종묘회사는 유럽산 핑크뮬리를 톤 단위로 수입했다. 사람들이 핑크뮬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식재되고 있어 앞으로는 특정 조성지가 아닌 전국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핑크뮬리가 있으면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올 것’이라는 공식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유행은 말 그대로 유행일 뿐 오래가지 못한다. 일상에 녹아들어가고 있는 핑크뮬리의 유행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문화·역사적 특징과 맞는 식물을 선정해 조경하는 것이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관광자원을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