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식(食)=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식(食)=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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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 30대 윤민지(가명) 씨는 식사 후 뒷정리를 하면서 매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도시락 하나를 시켜도 국과 반찬 등 함께 딸려오는 일회용 용기를 세척하고 버리려 하다 보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처럼 나온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일에는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이 한가득 내어놓게 된다. 검은색, 투명, 흰색 갖가지 플라스틱이 한꺼번에 나가는데 제대로 재활용이 될까 의심이 되기도 한다. 윤 씨는 “요리를 못해서 배달음식을 자주 이용했지만, 나 한 끼 제대로 먹자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만 같다”라고 토로했다.

식재료를 직접 사서 요리를 해먹는 경우라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확연히 줄일 수 있을까? 40대 이선화(가명) 씨는 이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답한다. 마트나 백화점 식품관에서 장보기를 하면 플라스틱이나 비닐 용기에 담겨있지 않은 상품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통과정에서 상품이 훼손되거나 손님들이 가볍게 집어갈 수 있게 하는 의도겠지만, 장을 보 고 오면 장을 본만큼의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화씨는 장바구니를 이용하거나 안쓰는 종이봉투에 개별 판매되는 상품을 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긴 하지만, 1+1 상품이나 패키지 묶음으로 재포장된 상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20대 김재호 씨는 플라스틱이 넘치는 세상에서 플라스틱을 구매하지 않기 위해 포장 용기를 직접 들고 다니기로 했다. 텀블러 사용은 기본이고, 음식을 포장할 때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넉넉한 밀폐용기와 에코백을 챙겼다. 마트는 비닐이 사용이 녹록찮아서 재래시장을 이용했다. 일명 #용기내 챌린지다.

#용기내 챌린지는 지난해 4월, 배우 류준열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글로 시작되었다. 야채, 고기 등 식료품이 있는 평범한 장보기 사진 아래 “너를 산 적은 없는데 #플라스틱” “플라스틱을 주문하니 과일이 딸려 온 건지… #플라스틱”이라는 코멘트가 달렸다. 이어 다회용 용기에 생선을 사는 모습과 함께 “마트에 가서 용기를 내보았다 #용기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류준열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그린피스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과 함께 진행한 것으로 그는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 줄이기 캠페인을 위해 그린피스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환경 이슈에 대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캠페인 ‘#용기내’는 우리가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부지런히 다회용 가방과 용기를 챙겨야 하고, 자연스럽게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사장님들에게 재빠르게 다회용기를 내밀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향한 당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일상 속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특히 제로 웨이스트 숍이 곳곳에서 문을 열고 있고 고정적인 구매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 중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지구샵’은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문화 정착, 지구를 위한 낭비 없는 가게를 표방한다. 비닐 포장이나 플라스틱 포장 제품 대신 무포장, 벌크 포장(대용량 제품), 공정무역 제품을 선보이고, 천연 수세미, 고체 치약, 대나무 칫솔 등 자연 친화적인 제품도 만나볼 수 있다.

‘더피커’ 역시 포장 폐기물 감소를 중심을 목표로 하는 제로 웨이스트 플랫폼이다. 서울숲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포장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곡류와 채소, 식료품 등을 고객이 원하는 만큼 직접 가져온 장바구니와 보관용기에 담아 구매할 수 있으며,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생분해 천연 치실, 대나무코튼 재사용 화장솜, 유기농 설거지 비누, 재사용 화장지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 되고 있지만, 광범위하고 심각한 플리스틱 오염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분야는 바로 포장재다. 2015년 생산된 플라스틱의 약 40%가 일회용 포장을 위해 사용되었다. 식품, 음료, 화장품, 세재 등 한 번 쓰고 버리도록 만든 일회용 포장 제품이야말로 플라스틱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의 주범인 것이다.

이런 플라스틱 포장재가 소비되는 대표적인 공간은 바로 마트다. 마트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간 다리이자, 어떤 제조사의 상품을 마트 선반에 올릴지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2019년 10월부터 국내 5대 대형마트를 대상으로 플라스틱 사용량 및 저감을 위한 노력 및 계획에 관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5개 대형마트의 일회용 플라스틱 감축 노력을 평가한 결과 이마트를 제외한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4개 대형마트가 F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5개 대형마트는 환경부와 ‘일회용 비닐쇼핑백·과대포장 없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식’을 맺은 업체들이다.

녹색소비자연대가 그린피스와 함께 진행한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가운데 7명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줄인 대형마트로 구매처를 변경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과도한 플라스틱 포장으로 제품 구매 선택을 변경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에 대해서는 소비자 2명 중 1명(48.6%)이 ‘있다’고 답했으며, 플라스틱 포장재를 분리 배출하는 과정에서의 불편함 정도를 묻는 문항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65.6%)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환경부는 2050 탄소중립 실현과 탈플라스틱 시대로의 전환을 위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의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 16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내년 6월부터 커피전문점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전면 금지될 전망이다. 이밖에 환경부는 음식 배달 용기의 두께를 제한해 사용량을 절감하고 재질과 구조를 표준화해 재활용을 쉽게 할 방침이다. 플라스틱 수저 등 불필요한 일회용품 사용도 제한할 계획이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기후 위기로 바짝 다가온 위기감에 현재의 편리함보다는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