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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으로 퍼진 젠트리피케이션 바람을 잡아라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  / 2017-09-18 10:33:14


newsone [사진] 경주 황리단길

경주는 천 년의 고도다. 야트막한 산과 구릉, 고분에 겹겹이 둘러싸여 어디든 문화재로 가득하다. 오래된 것 일색인 경주에도 새로운 것이 가득한 거리가 있으니 바로 ‘황리단길’이다. 경주를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자리를 잡으며 유명해지자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달 종영한 tvN의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경주편’에 출연한 한 청년은 “1년 여만에 10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고 증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도시 안에서만 돌던 젠트리피케이션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경주 황남동의 봉황로와 내남사거리에서 황남동 주민센터까지 이어지는 편도 1차선 도로, 대릉원을 끼고 도는 조용한 황리단길에는 특별한 가게들이 있다. 흑백사진만 찍어준다는 사진관, 문학서적만 판다는 서점, 일본식 근대 지붕을 얹은 커피점 등 독특한 가게들이 SNS에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황리단길’에 오기 위해 경주에 왔다는 한 여성은 이 거리를 두고 “도시에서 잊고 있던 옛것을 따뜻하고 세련되게 재탄생시켜주는 곳인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원래 황리단길은 낡고 오래된 기와집과 슬레브집이 이어져있던 경주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었다. 이곳에 특색 있는 가게들이 생기게 된 것도 임대료가 낮아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 2년 사이에 건물주가 임대료를 10배 이상 올린 곳도 있다. 상권을 활성화 시킨 건 상인들인데, 정작 그 혜택은 건물주가 가져가고 있는 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원 의미는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 돼 중산층이 유입되고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현상이다. 최근에는 그 의미가 바뀌어 저렴한 임대료가 형성된 지역에 예술가 혹은 청년 창업가들이 모여들어 다른 곳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지역 분위기를 형성해 주목을 받으면, 상권 활성화로 소유 건물의 가치가 높아진 임대인들이 기존 임차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로 채워 일반적인 상업지역으로 귀결되는 패턴이다. 최근에는 이런 현상이 일반주거지역에서 일어나 원주민이 일상생활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문제까지 함께 발생하고 있다.

서울 ‘경리단길’의 이름을 따서 망원동의 ‘망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전주 다가동 ‘객리단길’, 울산의 ‘꽃리단길’ 등 모두 ‘~리단길’이라는 이름하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시름하고 있다.

매체에 굵직한 특색있는 관광지가 자주 소개되며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는 부산 곳곳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이미 심화단계에 이르렀다.

광복로는 최근 3년간 1층 매장의 임대료가 꾸준히 올라 지금은 월평균 2천만∼4천만원에 육박하고, 중앙동 40계단 일대의 예술공간이 인기를 끌면서 해마다 6% 이상 오르고 있다. 서핑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송정해수욕장 일대는 5년 사이에 음식점이 70곳 이상 더 생겼고, 지가 상승률은 9.6%에 달했다. 같은 기간 방문객이 430배 급증한 감천문화마을은 주택 공시가격이 21.4%나 올랐다.


[사진] 부산 남포동

젠트리피케이션의 끝은 상권 쇠퇴로 이어진다. 프랜차이즈에 잠식당하고 특색 있는 가게가 사라진 상권에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길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임대인, 임차인, 원주민, 방문객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다.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심각성을 느끼고 2015년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건물주-임차인 상생협약 ▲소상공인 앵커시설 대여 ▲장기안심상가 ▲소상공인 상가매입 지원 등으로 ‘기존 임차인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서울시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지역(성수동 서울숲길)에 대해 대기업 프랜차이즈 입점을 제한하는 조례를 재정했다. 구청이 재빠르게 나서서 전국 최초로 상생을 도모한 것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도시 재생을 하면서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례가 적용되는 지역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유흥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심의해서 결정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임대인과 임차인이 일정 부분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않기로 하는 상생협약도 맺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서 실질적 도움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도 도시재생지역에 대해 두 손을 걷고 나섰다. 5년간 전국 110개 이상 지역에 총 예산 50조원을 투입해 주민들이 원하는 생활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사업인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실시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3중 안전장치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다. 국토부의 뉴딜사업 계획방안에 따르면 ▲상가임대차보호법 강화 ▲공공임대상가 의무화 ▲상생협약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강화 세부사안으로는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10년으로 연장, 임대료 상한 한도를 낮추고, 환산보증금 한도를 조정하거나 폐지하며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임대료 인상으로 쫓겨나는 영세 상인을 받아주는 공공임대상가를 확충하고 의무화하고, 지자체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자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을 상쇄시키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담겨있다.

도시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건물이 노후화하고 구도심이 할렘화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예술가들과 청년들이 이런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도시 재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공공의 이익이 자본주의 논리에 잠식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지자체와 당사자들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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